미방송사 아이티 투입 “취재도 하고 진료도 하고”
아이티 참사 현장을 취재하는 미국의 모든 지상파 방송들이 현장에 의사 출신 기자들을 투입했다.
미 방송사들이 예외없이 일제히 재난 취재 현장에 의사 기자들을 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CBS 방송은 의학담당기자이자 의사인 제니퍼 애쉬튼을, NBC 방송은 외과의사인 낸시 쉬나이더만을, ABC 방송은 질병관리센터 소속 의사 출신인 리처드 베서를 아이티 재난 현장취재 기자로 보냈다.
이들은 아이티 참사 현장에서 기자로서 보도도 하고, 의사로서 인명도 살리는 `1인2역'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애쉬튼 기자는 팔이 절단된 10대 소녀의 처치를 도왔고, 쉬나이더만 기자는 뼈가 부러진 주민들을 치료했으며 베서 기자는 야외 공원 텐트에서 20대 임산부의 분만을 돕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의사 출신 기자들을 일제히 아이티 현장에 투입한 것은 CNN의 스타 의사 기자인 산제이 굽타의 영향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1일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공중위생국장직을 제의받았으나 이를 고사해 유명세를 탔던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굽타 기자는 이라크 전장에서 환자 수술을 하는 등 실천하는 의사 기자로 스타덤에 올랐다.
굽타 기자는 아이티에서도 취재도중 뇌수술 의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군 헬기편으로 아이티 해안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칼빈슨호로 날아가 12세 아이티 소녀의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도 했다.
의사 기자들의 수술 장면이나 진료 모습은 모두 해당 방송사를 통해 방영됨으로써,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투입된 기자가 기사의 토픽이 됐다.
미 언론은 "저널리스트가 기사의 부분이 되는 것은 통상적인 것은 아니다"며 이 부분을 주목했다.
대체로 기자들은 뉴스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피하거나,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취재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그 점에 비춰보면 의사 기자들의 `1인2역'과 방송사 보도는 파격인 셈이다.
저널리즘 윤리를 전공한 위스콘신대 스티븐 워드 교수는 "기자가 진료 지원을 하는 것은 극적인 장면을 위한 것이고 전체적인 스토리에 인간적 측면을 가미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돼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보도도 필요할 때가 있다"며 "그러나 자칫 그것은 작위적이거나 총체적인 사실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도 표시했다.
그는 또 이런 취재가 자사를 홍보하는 상업주의로 흐를 경우 더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의사 기자'들이 진료에 참여한다고 해서 객관적인 보도에 차질을 주지 않는데다 참상을 겪고 있는 아이티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들 기자는 "아이티와 같은 끔찍한 환경에서는 의사로서의 의무가 기자로서의 의무를 압도한다"고 말했다.
ABC 베서 기자는 "나의 주된 임무는 이번 지진이 아이티 주민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취재 보도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도움을 필요로 할때 도와야 한다고 돼 있다"며 긴급 환자를 돌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시청자들이 방송을 통해 진료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그 모습이 나에 대한 스토리가 아니라 바로 이곳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