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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블로그] 교육, 그 사회적 평등의 기회

등록 2010-02-08 11:14

제가 직장에서 하는 일 중 하나는 웹사이트 번역입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용어들이 한국어로 번역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 중 까다로운 것을 들라면 “Melting Pot”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용광로”입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실상 미국 사회에서는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고유명사처럼 쓰이기 때문에 “멜팅팟”이라고 그대로 번역해주는 편이 낫습니다. 이는 1940년대 이후로 다인종 미국 사회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데 이미 낡은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다인종이 섞여져서 각자의 정체성이 녹아들어 새로운 단일한 정체성을 창출해낸다는 것은 이미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이 났기 때문입니다. “멜팅팟”은 이상일 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은 저마다 자기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멜팅팟”에 녹아들지 않습니다. 제 아들만 해도 한국말에 서툴러도 나이 어린 “소녀시대”서부터 자기 이모뻘 되는 “이효리”까지 좋아하고, 갈비와 삼겹살은 그가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자리매김을 합니다. “I am a Korean.”이라고 말하지 “I am a Korean-American.”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 다니는 학교에서 검은 피부나 남미계통의 여학생들과는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여학생들과만 데이트를 해왔습니다. 그에 의하면 검은 피부의 학생들이 95 퍼센트를 차지하는 자기 학교에서는 그를 좋아하는 여학생들과 그를 싫어하는 여학생들이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합니다. 그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그에게 붙인 딱지는 “인종주의자”라고 합니다. 오직 한국 여학생들과만 데이트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자라나 뉴욕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한인 공동체와는 늘 거리를 두고 지낸 그이지만 자기 방안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삽니다. 그가 장거리 수영에서 1등을 하고 난 후에 제게 흥분한 목소리로, 그리고 정확한 한국말로 “박태환처럼 했어요.”하는 겁니다.

그가 어떻게 “멜팅팟”이라는 정체불명의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멜팅팟” 논리는 인종차별에 따른 사회적 압제를 은폐하는 데 한 몫 해왔습니다. 소수민족이 그 희생물이 되어왔습니다. “멜팅팟”을 통해서 다민족 사회에서 단일한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그 정체성의 모델은 결국 앵글로 색슨이나 유로피안 어메리컨입니다. 미국 사회의 토착 민족인 어메리컨 인디언이 그 모델에 의한 교육의 대표적인 피해자일 것입니다. 그 모델로 인해서 그들은 더욱 깊은 소외감과 열등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마침내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민족으로 판명됩니다.

이런 “멜팅팟”의 이념적 비현실성 때문에 등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자이크 모델”입니다. 각 민족마다 자기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면서 전체적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형성한다는 개념입니다. 현재로선 이것이 미국 사회의 이념적 전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편견, 소외 현상은 실상 인종에 근거한다고 봐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모자이크 논리는 아직도 이상이나 이념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1980년대 후반에 미국에 와서 공영방송에서 보았던 필름 중 한국계 미국인 Christine Choy가 감독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필름 “Who Killed Vincent Chin?”이 있습니다. 이 필름은 자동차 공장에서 실직한 백인이 주점에서 중국계 미국인을 일본인으로 알고 야구 방망이로 살해하고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의 사회적 불평등과 압제가 정치적 법률적 자유에도 불구하고 인종에 근거해서 작용함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 필름은 1989년에 아카데미 상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됩니다만 백색 문화가 지배하는 아카데미 상 풍토에 수상될 리가 없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에 따른 불평등과 소외, 압제의 모습은 검은 피부의 사람들 공동체에서 두드러지고 특히 학교 교육에서 여실해집니다. 미국의 교육 현장은 이 사회의 인종차별을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부모의 빈곤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흑인 자녀들은 그 빈곤을 벗어날 가장 효과적인 무대인 교육에서도 빈곤의 유산을 물려받습니다. 주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몰려 살고 그들 자녀들이 다니는 도시(Urban) 고등학교의 졸업 비율이 50퍼센트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백인들이나 아시아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교외(Rural) 고등학교의 졸업 비율보다 15퍼센트 이상 뒤떨어집니다. 그리고 도시 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졸업 비율에 비하면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제 아들이 다니는 도시 학교에서 커뮤니티 칼리지까지 포함해서 대학 진학률이 10퍼센트나 될까요?


이번 주에 제 아들 수영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12학년 수영 선수들을 위한 축하 순서를 갖는다고 해서 제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축하 순서에 제 아들의 대학 조기 합격과 그에 따른 장학금 혜택을 소개하더군요. 사실, 그 대학,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광고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학교로서는 공개적으로 알릴 만한 사례에 속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인종 풍속도에 따라 경제적 부와 사회적 권력이 형성되고 그 혜택은 교육 풍속도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인종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제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졸업생들 중에 대학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군대로 가는 경우를 왕왕 접합니다. 군대가 그들에게는 빈곤에서 탈출하고 사회적 안정을 기약하는 비상구가 됩니다. 이런 미국 사회의 교육 환경에서 제 아들이 입학하는 대학에서 여름에 소수민족 학생들을 위한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저마다 자기가 속한 학교에서 나름대로 우수한 그룹에 속합니다. 그들 중에는 부유층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이 그 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금전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수 민족 학생들이 교육에서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을 봅니다. 교육의 기회라는 면에서 평등의 가치가 존중되는 현상을 경험합니다. 이는 제 아들에게 적용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긍정적 교육 풍토입니다. 그나마 미국 사회에 이런 풍토가 있기에 인종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소된다고 여깁니다. 교육의 민주화가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와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야말로 모자이크 사회가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 사회의 경제적 난국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기관 중 하나는 주립대학을 비롯한 공립교육 기관입니다. 미국의 시립대학이나 주립대학은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그들이 사회적 불평등을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뉴욕시립대학 중 Baruch 칼리지는 90년대 초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내기도 했습니다. Graduate Center of CUNY(City University of New York)은 미국 사회 뿐 아니라 글로벌 공동체에서 대학원 교육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세계 수준의 학자들과 우수한 학생들이 이곳에서 연구하고 수학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탁월한 교육 수준은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정부 재정 삭감으로 많은 가난한 학생들이, 특히, 소수민족 학생들이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고 교육의 기회를 잃게 되는 형편입니다. 뉴욕 시립대학이나 주립대학도 이런 형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미국 경제의 난관은 소수 민족과 가난한 사람들이 그 주 대상인 공립교육 기관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할 통로의 숨통을 조이는 불행한 현실을 연출합니다. 교육에의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수 민족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를 가져오고 미국 사회에서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오바마의 등장 배경에는 그의 교육이 있었는데 공립교육의 질 저하나 위축은 그와 같은 피부 색깔의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리더십을 갖고 권력과 특혜를 공유하는 길이 막히게 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종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압제의 해소는 교육 기회의 평등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평등은 자본과 인력의 투자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앞서서 제 아들의 대학 입학에 관해서 가볍게 글을 써보았는데 제 글벗께서 아들에 대한 칭찬이라는 댓글을 읽고 나서 다시 미국 사회의 교육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교컴지기님처럼 교육 분야에 전문가가 필통 블로거로 활동하시기에 저보다 더 나은 안목을 가지고 계시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교육의 민주화가 사회 진보의 토대라는 기본 명제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제 아들이 속한 학교 교육 환경과 가정 형편에서 현재 경험하는 대학 입학의 혜택이 과연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이 사회적 압제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신분제가 아닌가요? 더구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학벌 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해주고 교육 기회에 있어서의 평등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만들지 않는가요? 제게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사회 정의나 민주화를 주장하는 논리가 왠지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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