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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언제 출근할 수 있을지…집앞 눈 치우기도 포기

등록 2010-02-11 21:17수정 2010-02-11 21:42

미국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 사는 한 가족이 식료품을 사들고 눈 덮인 길을 지나 집으로 가고 있다. 랭커스터/AP 연합뉴스
미국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 사는 한 가족이 식료품을 사들고 눈 덮인 길을 지나 집으로 가고 있다. 랭커스터/AP 연합뉴스
쓰레기 수거·우편물 배달 중단…슈퍼엔 빵·우유 동나
또 눈이다.

10일(현지시각), 산더미처럼 쌓인 눈 위에 눈이 덮인다. 집앞 5~6m 바깥 쪽 눈 위에 파묻힌 조간신문들을 가져오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눈삽을 들고 나갔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눈삽으로 몇 차례나 파낸 뒤에야 신문에 손이 닿을 수 있었다. 더 멀리, 더 깊숙이 떨어진 신문들을 가져오기 위해선 다른 쪽으로 또 눈을 파내야 했다. 신문을 가져오는 데 20분이 걸렸다. 집 앞 양옆으로는 지난 주말 치운 눈이 2m 높이 이상 쌓여 마치 모세가 가른 홍해 한가운데 서있는 듯하다.

올겨울 워싱턴의 누적 적설량은 이날 오후 이미 54.9인치(139.4㎝)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집계돼 역사상 최고기록을 깼다. 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은 111년 전인 1898년 말∼1899년 초 겨울의 54.4인치(138.2㎝)였고, 워싱턴의 겨울 평균 적설량은 15인치(38.1㎝)였다.

눈이 그치자마자 동네에 눈 치우는 소리가 가득했는데, 이날은 아예 그냥 내버려둔 집들이 많아 조용하기만 하다. 어차피 집앞을 치워도 집앞 도로에 눈이 쌓여 4륜구동형 차량도 타운하우스를 빠져나갈 수가 없어 주민들은 사실상 고립상태다. 제설차량이 고속도로와 간선도로의 눈을 우선적으로 치우기에 집앞 도로는 후순위로 밀린다. 현재 버지니아 일대 집앞도로 소통률은 30% 정도다. 당국은 주민들에게 아예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니면 집앞 출입을 삼가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6살짜리 아들을 둔 이웃집 이혼남 짐은 “지난 주말 아이가 왔다가 눈에 묶여 엄마한테 못 데려다 주고 있다. 회사도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폭설 이후, 인터넷 연결이 자주 끊겨 이틀 전 인터넷 회사의 기술자를 불러 예약을 했으나, 예상대로 그는 이날 못 온다고 연락왔다. 전기가 끊기지 않은 걸 감사할 뿐이다. 매주 두 차례씩 오는 쓰레기 수거차량도 지난 주말부터 오지 못해 집집마다 쓰레기가 가득 찼고, 우편물 배달도 끊겼다.

폭설이 내린 지난 주말만 해도 사람들은 여유가 있었다. 눈이 그친 뒤, 타운하우스 사람들이 모두 다 집밖으로 나와 함께 눈을 치워 작은 마을축제라도 열린 듯했다. 건넛집에 사는 캐나다인 부부가 ‘캐나다 사람답게’ 가정용 제설기를 밀며 익숙한 솜씨로 타운하우스 옆 인도의 눈을 치워 길을 내줬다. 사람들은 자기 집앞 눈을 치우다가도 여자 혼자 살거나, 노인들만 사는 집 앞 눈을 대신 치워주는 등 ‘작은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이글루처럼 눈굴을 뚫고, 눈산 위에 올라가 눈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폭설에 사람들도 이젠 지친 듯하다. 이번 2차 폭설에 대비해 지난 9일 슈퍼에 갔으나 우유, 빵 등이 동이 났고 계산대 위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일부에선 ‘사재기’ 바람도 불고 있다고 한다. 슈퍼 인근을 제외하곤 웬만한 가게는 문을 닫았고, 차량도 끊겨 도시 전체가 한산하다. 공항, 지하철, 버스 등 교통수단도 사실상 모두 끊어졌다. 수천가구 정전사태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밤부터는 기온도 뚝 떨어져 포토맥강도 완전히 얼어붙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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