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보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더 무서웠다.
지난 27일(현지시각) 칠레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의 70%는 건물·도로 붕괴 등 지상재해가 아니라 해안지역에 밀어닥친 쓰나미 때문에 숨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진앙에서 65㎞ 떨어진 마울레의 작은 어촌마을인 콘스티투시온에서만 35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칠레 국영 텔레비전방송이 전했다.
콘스티투시온 등 해안지역에선, 칠레 당국이 지진 발생 직후 닥쳐올 쓰나미의 위험성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해, 피할 수도 있었던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진앙에 가까운 콘스티투시온 등에선 30분 만에 5~6m의 쓰나미가 해안마을을 덮쳐 주민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콘스티투시온은 1960년 칠레 남부 해안을 강타한 규모 9.5의 대지진 때에도 거대한 지진해일을 겪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전에 쓰나미 경보가 발령돼 주민들이 고지대로 대피해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이 28일 보도했다.
강진 발생 하루가 지난 28일, 칠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콘셉시온에서 한 여성이 슈퍼마켓에서 화장지를 잔뜩 훔쳐 달아나고 있다. 콘셉시온/AFP 연합뉴스
특히 콘스티투시온에선 쓰나미 물결에 휩쓸려 15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피해가 더 커질 전망이다. 현지 경찰은 피해 실태를 조사중이며 사망자 최종집계는 더 늘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칠레에선 첫 지진 이후 1일 오전까지 규모 4.6에서 6.9까지의 여진이 최소 115차례나 더 이어졌다. 진앙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휴양지인 디차토에도 바닷물이 해안에서 400m나 밀려들어왔으나 아직 정확한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칠레 해안에서 700㎞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 섬에선 3㎞까지 시내 쪽으로 들어와 주민 600여명 가운데 5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더디거나 부실한 경보 탓에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칠레 정부와 재해당국의 책임 문제도 불거질 전망이다. 칠레 정부는 지진 발생 초기에 쓰나미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실수를 인정했다. 칠레의 프란치스코 비달 국방장관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칠레 해군이 판단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존 클레이그 교수(지구과학)는 “칠레 당국이 지진 발생 이후 해일이 마을을 덮치기까지 아무도 대피시킬 시간이 없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칠레는 남미 대륙의 태평양 연안에 남북으로 4300㎞ 가까이나 길고 가늘게 뻗어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진해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지진으로 칠레 국토의 80%가 영향을 받았으며, 전체 사망자 710여명 가운데 500명 이상이 지진해일에 노출된 해안지역 주민들이라고 <에이비시>(ABC) 방송이 1일 칠레 외교관의 말을 따 보도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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