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고 선진국 평가받다
강진뒤 무질서 전세계 망신
강진뒤 무질서 전세계 망신
칠레는 흔히 ‘남미의 재규어’로 불린다. 가난과 혼란으로 얼룩진 남미에서 상대적으로 건실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이라는 평가와 부러움이 담긴 표현이다. 지난 1월엔 남미에서는 처음으로 ‘선진국 모임’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3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칠레 강진 뒤 벌어진 약탈과 방화 등 무질서는 칠레인들의 자부심에 먹칠을 하고 있다. 2대도시 콘셉시온 등에는 1만4천명의 군인이 배치되고서야 약탈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칠레의 힘을 다시 보여주자”고 호소했지만 약탈은 계속됐다. 슈퍼마켓에서 화장지와 가전제품을 훔쳐서 달아나는 모습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칠레는 치안이 진짜 좋다’는 평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칠레 정부는 2일 콘셉시온에 대한 통행금지를 오후 6시에서 다음날 낮 12시로 확대했다. 22살의 대학생 카탈리나 살도발은 무법상황에 “범죄자뿐 아니라 잘 사는 사람들까지 훔치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16년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독재를 겪은 칠레인들은 군대의 개입을 꺼려왔지만 이마저 무너졌다. 콘셉시온에서는 군인들이 도착하자, 약탈을 당하던 주민들이 환호했다. 쓰나미 경보실패와 구호물자 전달 지연 등도 정부에 대한 실망을 키웠다. 칠레 일간 <라테르세라>는 “약탈과 폭력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취약함과 행정 지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허술하게 지은 빈곤층 지역 주택 등에 피해가 집중되면서,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도 다시 드러났다.
그나마 혼돈은 지진 발생 나흘만인 2일 크게 진정됐다. 콘셉시온에서는 식료품과 물 등이 담긴 바구니가 배급되고 주유소도 문을 열었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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