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하면 묵비권 포기?
앞으로 미국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려면 입을 다물기 전에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말만큼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뜻하는 미란다원칙을 좁게 해석한 판결 때문이다.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미란다원칙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00년 미시간주 총기살해사건 피의자 밴 톰킨스가 무심결에 뱉은 “예”라는 말 한마디다. 톰킨스는 3시간여의 심문 내내 거의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중 수사관이 “그 사람을 쏴 살해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느냐”고 묻자 “예”라고 답하고 고개를 떨궜다. 미시시피주 법원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톰킨스가 묵비권을 행사했는지 논란이 된 이 재판에서 연방대법원 보수 성향 대법관 5명이 경찰 편에 섰다고 1일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연방대법원은 “톰킨스에게 미란다원칙이 고지돼 그가 이해를 했고, 강압이 없는 상태에서 진술했다는 것은 묵비권 포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임명돼 가장 신참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다른 3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과 함께 소수의견을 내며 “이번 판결은 미란다원칙을 거꾸로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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