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출입한 헬렌 토머스
소신 발언 파문 커져 퇴진
소신 발언 파문 커져 퇴진
미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인 헬렌 토머스(89) 기자가 7일 유대인 관련 발언 파문으로 만 50년을 지켜온 백악관 기자실을 불명예 퇴진했다.
레바논계 미국인인 토머스가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관련행사에서 만난 랍비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평소 반이스라엘적 인식을 거칠게 드러낸 답변을 한 게 발단이 됐다. 그는 “유대인들은 ‘염병할’ 팔레스타인을 떠나 (자신들의 집인) 폴란드나 독일, 미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이 랍비가 자신의 아들이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 동영상은 인터넷 공간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토머스가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지만, 결국 ‘은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으로 케네디 대통령 이후 10명의 대통령과 숱한 백악관 대변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토머스의 발언이 문제된 적은 한두번이 아니다. 그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도 다 알려진 얘기다. 그는 때론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구호선단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시점에 이스라엘에 대한 말실수가 터져 나오면서 유대인뿐 아니라 그의 평소 과격한 발언에 반감과 악감정을 가진 인사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백악관 기자단은 “도저히 옹호하기 힘든 발언”이라는 성명을 내놨고,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모욕적이며, 비난받을만한 발언”이라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론 편향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기자들이 감히 물어볼 엄두도 못 내는 질문을 쏘아붙이던 토머스가 미국 언론계에서 여성의 장벽을 허문 선구자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최초의 백악관 출입 여성기자, 백악관 출입기자단 대표 등등. 90살 생일을 두 달 앞두고 현직을 고수했던 토머스는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언론사 이름 대신 유일하게 자기 이름을 붙인 의자를 가진 기자였다.
토머스는 1943년 <유피아이>(UPI) 통신에 입사해 2000년 통신사가 통일교 재단에 매각됐을 때 57년간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허스트뉴스서비스>의 칼럼니스트로 백악관 기자실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해 은퇴한 <에이비시>(ABC)방송의 백악관 출입 동료기자였던 샘 도널드슨(76)은 “일 이외에 다른 관심이 없었고, 포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