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정권때 고문·살인 자행 장교들
가톨릭계 사면요구에 유가족·야당 반발
가톨릭계 사면요구에 유가족·야당 반발
칠레에서 군사독재 시절 인권침해 혐의로 복역중인 장교들에 대한 사면 여부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프란시스코 에라수리스 추기경과 몬시그노르 고이크 주교회의 의장은 21일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을 만나, 오는 9월18일 칠레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관용의 뜻으로 수감자 사면을 요청했다. 질병을 앓고 있거나 70살 이상, 형기의 절반 이상을 채운 범죄자가 대상이지만, 문제는 1973~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 인권침해를 자행한 혐의로 수감된 장교들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날 대통령궁 밖에서는 인권단체 회원과 피해자 가족 등이 사면 반대 시위를 벌였다.
고이크 주교는 “우리의 제안은 과거의 상처를 다시 헐거나 완전히 덮어버리자는 게 아니다”며 “자유를 빼앗긴 이들의 고통과 각각의 책임의 정도, 잘못에 대한 반성 등을 고려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 유가족에게는 관용을 논하기에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칠레는 군사 독재 기간에 공식적으로만 약 3065명이 살해되고 1200명이 실종됐다. 이 때문에 약 600명의 군 관리가 기소됐으며 현재 수감자는 150명 미만으로 알려졌다.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철권통치를 했던 피노체트는 2006년 사법적 단죄를 받지 않는 채 자연사했다.
유가족들은 사면은 “희생자의 고통을 눈감는 것으로 정의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인권단체들은 독재시절 살인과 납치, 고문 등을 저지른 장교들에 대해 더 무거운 처벌을 요구해왔다. 사면대상으로 검토되는 군 관리들은 약 35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 정부는 일단 “진실과 정의, 국가단결, 인도주의 등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도우파 실용주의를 표방한 피녜라 대통령은 독재 시절 인물들과 거리를 둬온데다 야당도 강력히 반대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22일 전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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