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샤프턴 목사 등 흑인인권운동가 등 수천명은 보수주의자들이 마틴 루서 킹 목사 이름을 ‘도용’한 집회를 연 데 항의해 인근 고등학교에서 맞불 집회를 열고 보수집회가 열리는 링컨기념관까지 평화행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링컨기념관 앞 페일린 등 수십만명 “애국주의” 외쳐
NYT “종교부흥회 같아”…민권운동가 등 맞불집회
* 킹 목사 :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NYT “종교부흥회 같아”…민권운동가 등 맞불집회
* 킹 목사 :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백인만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소유할 수 없고, 흑인만이 마틴 루서 킹을 소유할 수 없다. 이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미국인의 이상이다.”
보수적인 <폭스뉴스>의 사회자이자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글렌 벡(46)은 28일 워싱턴에서 열린 대규모 보수 집회에서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인 킹 목사까지 끌어들였다. 최근 그라운드제로 옆 모스크 건설을 둘러싼 논란 등에 이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수들이 행동에 나서면서, 미국 사회는 보수 대 진보의 대결구도가 극단화되는 형세다.
이날 집회가 열린 링컨 기념관 앞 계단은 이날로부터 꼭 47년 전 킹 목사가 유명한 ‘나에겐 꿈이 있다’라는 연설을 한 곳이다. 벡은 행사시점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진보진영과 흑인 인권운동가들로부터는 비판이 거셌다. 이들은 ‘티 파티’를 비롯한 보수세력들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세 과시를 위해 이날 행사를 기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평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폭언에 가까운 말을 퍼붓던 벡은 이를 의식한 듯 특별히 이날 집회의 “비정치적 성격”을 강조했고, 벡과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비롯한 연사들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애국주의의 부활을 촉구했다. 벡은 “인간을 힘을 넘어선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오늘부터 비로소 신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일린은 이날 모인 청중을 ‘애국자’로 치켜세우며 “우리는 미국을 재건하고, 미국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집회가 “부분적으로 종교 부흥회이고, 역사 강의 같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이날 전국에서 몰려든 30만~50만명의 면면을 보더라도 단순한 평화 집회는 아니다.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청중들은 “미국의 정치적 리더십과 국정 운영방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자처하는 보수주의자들이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최근 미국내 보수 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티 파티의 회원들이 전세버스 등을 타고 참석했고, 티 파티의 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은 전했다.
같은 시각엔 이에 항의하는 맞불 집회도 열렸다. 흑인 민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 등 수천명은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생긴 흑인 학교인 인근 던바 고등학교에 킹 목사 연설 47년 행사를 열고 보수집회가 열리는 링컨기념관까지 행진을 벌였다. 샤프톤 목사는 “킹 목사의 꿈을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많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킹 목사의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서로가 킹 목사의 유산 계승을 주장하면서 “수십년 만에 최대의 문화충돌이 워싱턴에서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누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계승자인가 미국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 중의 하나로 꼽히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28일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우리는 미국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간접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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