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칠레 강진으로 무너진 콘셉시온의 ‘알토 리오’ 아파트가 붕괴원인 규명을 위해 철거되지 않고 방치돼 있다.
파괴된 건물 접근 막고 잔해 치워져…도로도 복구
약탈당한 할인점 문 열었지만 “용서하기 어렵다”
약탈당한 할인점 문 열었지만 “용서하기 어렵다”
강진 6개월, 콘셉시온 가보니
무너진 15층짜리 ‘알또 리오’ 아파트는 아직도 허옇게 밑동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철근 뿌리를 드러낸 채 건물 전체가 옆으로 폭삭 누운 모습이다. 지난 2월27일 규모 8.8의 강진이 칠레를 강타한 지 6개월여가 지난 21일, 당시 최대 피해를 입은 2대 도시 콘셉시온은 아직도 곳곳에 상흔이 남아있었다.
알토 리오 아파트 붕괴현장의 차단선 안에 경찰 한 명이 순찰차를 세워둔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8명이 숨진 이 아파트 붕괴 현장 뒤편에는 짓다만 아파트가 덩그러니 서있다. 이 경찰관은 “건물 붕괴 원인을 밝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철거를 못하고 있다”며 “건물 안에 꺼내지 못하고 남은 물건들도 있다”고 말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 옆으로 누워버린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원인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내를 걷다보니 듬성듬성 건물의 벽이 금이 가거나, 창문이 부서진 채 방치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 파괴된 건물은 접근이 차단됐다. 몇몇 무너진 저층 건물의 잔해는 치워져, 건물터만 남아있었다.
띄엄띄엄 파괴된 고층 건물들을 빼면, 콘셉시온은 규모 8.8의 강진이 휩쓴 곳이라기에는 상당히 멀쩡해 보였다. 수도 산티아고에서 콘셉시온을 잇는 도로도 거의 복구된 듯, 6시간30분 남짓 버스를 타는 동안 공사 구간은 한두 곳 정도만 눈에 띄었다. 지진 당시 약탈이 저질러졌던 콘셉시온의 대형 할인점 ‘리데르’는 주말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할인점 한 점원은 “지진 당시는 주민들이 문을 부수고 물건들을 훔쳐갔지만 경찰도 감당이 안돼 방치했다”며 “며칠 뒤 돌아와보니 엉망진창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복구되지 않은 건물들처럼, 지진이라는 재앙 앞에 벌어졌던 약탈을 둘러싼 상처 또한 완전히 치유되진 않았다. 거리를 지나던 주민 마르코 구스만은 “먹을 게 떨어져 식료품 등을 훔친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하더라도, 혼란을 틈타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까지 훔치는 멍청한 주민들 때문에 군대까지 파견되는 등 혼란이 길어졌다”며 “아직도 용서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복구의 혼란 속에 지난 3월 새로 취임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다. 할인점에서 고기를 사려던 클라우디오 호프레는 “수도 산티아고는 서둘러 복구했지만 콘셉시온은 복구가 너무 느려 붕괴 건물 주변 상권이 모두 죽었다”며 “9월18일이 스페인에서 독립된 지 200주년을 맞는 기념일이지만 축하할 게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다수 주민들은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재난이다.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짧은 시간이다”는 대답이 많았다.
상처를 안고 있지만 일상을 찾아가기 위해 애쓰는 콘셉시온 주민들의 힘 때문일까? 칠레는 2월 당시 강진과 해일로 521명이 숨지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17%에 이르는 300억달러의 피해를 입었지만, 올해 2분기에 6.5%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콘셉시온/글·사진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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