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난에 ‘노숙가족’ 다시 증가세
지난해 쉼터 찾은 가족 13%↑
‘조부모 양육’ 조손가정도 급증
백인 중산층 위기 두드러져
‘조부모 양육’ 조손가정도 급증
백인 중산층 위기 두드러져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 사는 닉 그리피스(40)는 최근 들어 아내 래시(24)와 말다툼이 잦아졌다. 그리피스가 올해 초 실직한 뒤, 그의 가족은 지역의 노숙자 구호시설(이하 쉼터)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홈리스(homeless)가 됐다. 그 충격에 부부 모두 한동안 끊었던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두 아이 에바(3)와 이선(1)은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울보로 변했다.
2년 전 플로리다로 이주할 때만 해도 그리피스의 인생은 장밋빛이었다. 식당 체인점 애플비스의 웨이터였던 그는 플로리다 스프링힐의 새 매장으로 이동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그리피스는 한 시간에 팁을 포함해 25달러, 다른 식당에서 조리사로 부업을 하며 추가로 12달러를 벌었다. 그는 침실이 세개 있는 아파트에 스포츠실용차(SUV)를 타고 다니며 플로리다 교외의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1월부터다. 장기화된 경기침체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조리사로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윽고 애플비스의 근무 시간도 크게 줄었다. 결국 그는 차량 두대를 모두 전당포에 저당 잡혀야 했고, 아파트에서도 쫓겨났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1일, 2008년 이후 경기침체가 길어지며 이처럼 쉼터 신세를 지는 미국 가정의 수가 폭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피스 가족이 머물고 있는 로드아일랜드의 쉼터 ‘크로스로드’에만 올 들어 7월까지 324가구가 도움을 요청해 2009년 전체 통계(278가구)를 뛰어넘었다. 오하이오와 애리조나의 쉼터에도 가족 수가 최근 몇달 동안 이전에 견줘 20~30%나 늘었다. 미 정부가 지난 6월 내놓은 노숙문제 보고서 ‘오프닝 도어스’(Opening Doors)를 보면, 2009년 한해 동안 쉼터 신세를 진 가족은 53만5000여명으로 2007년에 견줘 13%나 늘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경제위기 여파는 조손 가정의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9일 보고서를 보면, 미국에서 조부모가 아이의 주 보호자인 ‘조손 가정’의 수가 2000년 250만여명에서 2008년 290만명으로 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조손 가정은 원래 흑인·히스패닉계에서 많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백인 가정의 증가세가 9%에 달해 흑인(2%)과 히스패닉(변동 없음)을 크게 앞섰다. 이번 경제위기로 중산층을 이루는 백인 가정이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폭스뉴스> 인터넷판도 12일 인구통계학자 6명이 제시한 추정치를 근거로 2008년 13.2%였던 빈곤율이 2009년에는 14.7~15%로 증가해 상승폭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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