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참전 장교 회고록 전량 구입해 폐기
미국 국방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아프카니스탄전에 참전한 예비역 장교의 회고록 초판 전부를 사들여 폐기하는 촌극을 벌였다.
에이프릴 커닝햄 미 국방부 대변인은 25일 “육군 예비역 중령 앤서니 셰퍼의 회고록 <작전명 다크 하트>에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어 초판본 9500여권을 사들여 지난 20일 폐기했다”고 밝혔다. 셰퍼는 이날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막기 위해 1만권의 책을 사들이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국방부를 비난했다.
셰퍼는 이번 회고록에서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2003년 아프카니스탄전에 참전해 ‘제다이 기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비밀 부대를 이끌며 파키스탄 내 탈레반 핵심 인물들을 타격하는 작전을 수행했으나 미군 고위 장성들이 이를 제한해 탈레반이 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고, 미국은 승리를 얻을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판에 앞서 미 예비군 사령부의 책 출판 허가를 받았지만, 지난 8월 미 국방부의 로날드 버게스 중장은 “이 책에는 매우 중요한 기밀 정보들이 들어 있어 이런 사실이 공개될 때에는 국가 안보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고 결론 맺고 책 폐기를 강행했다.
검열을 받아 새로 출판된 299쪽 분량의 개정판에는 “문장 곳곳의 단어들이 생략됐으며, 15장 일부에서는 2쪽에 걸쳐 21줄 전체가 검열되기도 했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최근 “모든 작가처럼 셰퍼도 자신이 쓴 책이 너무 인기가 많아 책을 서점에서 찾기 힘들어지는 게 소원이었을 것“이라며 “미 국방부 때문에 꿈을 이루게 됐다”고 비꼬았다. 26일 현재 경매사이트 ‘이베이’에는 폐기된 초판을 2000달러(소매가 25.99달러)에 팔겠다는 사람도 등장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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