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평화협상서 굴욕감” 회고
“베트남에서 잘못했던 일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들에게 한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29일 35년전인 75년 막을 내린 베트남전의 실패를 이렇게 회고했다고 <허핑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이 전했다.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에 국무장관으로서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고 북베트남과의 평화협상에 직접 나섰던 키신저는 또 남베트남에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정부를 세우려는 미국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면서 “우리는 타협을 원했으나, 하노이는 승리를 원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북베트남과의 파리 평화협상에서 미국은 수세에 처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키신저의 발언은 미 국무부가 최근 기밀 해제된 문서를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개입 정책을 평가하는 세미나에서 나온 것이다. 세미나에서 그는 미국의 경우 정책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끝났어야 할 문제들이 도덕적 문제로 변질됐으며, “그것도 처음엔 미국 외교정책의 도덕성 문제였으나 나중에는 미국의 도덕성 문제가 됐다” 면서 북베트남 지도부의 통일에 대한 집요함 내지 강인함과 미국의 분열을 대비시켰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그는 파리 평화협상의 북베트남 대표였던 레둑토를 “외과용 메스를 든 의사처럼 아주 능숙하게 우리를 다뤘다”면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얼굴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라며 평화협상에서 미국이 느낀 굴욕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973년 5월21일 파리 평화협상의 속기록에는 키신저가 레둑토에게 “만난 지 45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고 말하자 레둑토는 “당신은 문제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고 응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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