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미 ‘스마트 외교’ 휘장 뒤에서 동맹국 주무른 ‘스파이 외교’

등록 2010-12-12 20:45수정 2010-12-12 21:44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두 얼굴’
호주 체육장관·독 외무 비서실장도 정보원 노릇
국무부 뒤캐고, CIA 약점잡고 공조…도청도
기후협약 회의때는 달러로 약소국 회유·협박
“외교는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전쟁의 연속이다.”

지난해 1월 당시 주중 미국 대사 클라크 랜트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30여년 전 서방을 다룰 줄 알던 유일한 중국 외교 관료”로 묘사한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 겸 외교부장이 내린 외교의 정의다. 저우언라이의 말을 몸소 실천한 건 다름 아닌 미국 외교관들일지 모른다. 최근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 폭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지저분한 전쟁’을 치르는 미국 외교관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스파이·뒤캐기 외교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지난 2일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이 “젊고 전도유망”하며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 표현해온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혀냈다. 이 신문이 ‘헬무트 M’으로 묘사한 정보원은 독일의 기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 겸 자유민주당 총재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연립정부의 권력 분점 협상과 군축 논의 등 민감한 정보를 미국 대사관에 정기적으로 전하고, 심지어 당 내부문건까지 건네왔다. 간첩에 버금가는 그의 활동에 독일 정치권과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장관이 미국 대사관이 아끼는 정보원 노릇을 했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 대사관의 비밀 전문에 자주 등장하는 정보원이 상원의원이면서 체육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겸직하는 마크 아비브로 판명됐다고 지난 9일 폭로했다. 아비브는 일상적 접촉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미국 대사관은 누구보다 친미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기적으로 정부 동향을 전해준 그를 “보호 대상”으로 지정해 보통 관계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그와 관련된 전문에는 “외국인 열람 불가”라는 보호 등급도 붙었다.

이처럼 각국 주요 인사들이 은밀하게 미국의 정보원 노릇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파이 외교’ 논란도 불가피해졌다. <뉴욕타임스> 등이 전문을 공개하면서 ‘××× …’로 처리해 이름을 가려준 인사들은 대부분 중요하고 민감한 정보를 건넸는데,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가 드러나면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폭로 초기에 전세계에서 미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이 뒤 캐기와 약점 잡기에 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탄로났다. 중앙정보국은 국무부의 외교관들로 하여금 유엔 주재 외교관과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지도자들에 대한 생체정보와 신용카드 정보, 통신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 도청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전화번호와 인터넷 비밀번호를 캐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유엔 쪽에서도 외교관 보호와 면책을 보장한 협약 위반이라는 항의가 제기됐다. 2005년에는 중앙정보국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유엔 주재 외교관들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도청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 압력·회유 외교 미국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난해 12월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자국 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상당히 완화시킨 협약을 이끌어냈다. 미국 외교의 승리라고 부를 만한 결과였지만, 1년이 지나 공개된 외교 전문들은 미국이 노골적 압박과 회유로 조작에 가까운 결과를 받아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들을 보면, 미국은 궁핍한 약소국들을 집중적 회유 대상으로 삼았다. 몰디브 등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작은 섬나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재정 지원을 받으려고 온실가스의 대폭 감축안에 등을 돌리는 역설적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당시 미국 국무부의 조너선 퍼싱 기후변화 부특사는 유럽연합 쪽과 “그들의 재정적 필요를 감안할 때 군소도서국가연합 국가들이 가장 좋은 동맹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일치를 보고 ‘푼돈’으로 표를 샀다. 마리아 오테로 국무부 차관은 아프리카연합의 기후변화 협상을 이끌던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에게 “(일단) 코펜하겐 협약에 조인해야 협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와 각국 주재 대사관들은 또 2008년 9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한 워킹그룹에 이란 과학자가 공동대표로 지명되자 “위원회 사무국 예산 지원을 끊을 수 있다”고 압박해 지명을 철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외교의 부적절한 행태들은 위키리크스가 확보한 25만여건 중 불과 1300여건만 공개된 상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외신들은 이에 비춰 합법과 탈법 영역을 넘나드는 미국 외교관들의 행태는 훨씬 광범위하고 일상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욱이 폭로 전문들에는 1급 비밀에 해당하는 ‘톱 시크릿’은 포함되지 않았고, 2급 비밀인 ‘시크릿’ 전문들 중에도 ‘배포 불가’로 분류된 전문들은 빠져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콜라·사이다값 오른다
■ 오세훈 “박근혜 감세철회 한심하다”
■ 탈출 일주일째 곰‘꼬마’, 100m를 10초에 주파
■ ‘날치기’때문에…대학생 학자금 대출용1300억 전액 삭감됐다
■ ‘수혈 거부 논란’ 2개월된 영아 끝내 숨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