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실러
NPR 임원, 티파티 비난 발언 파문에 CEO도 퇴진
보수 활동가들, 무슬림 가장해 공화당 비판 유도
보수 활동가들, 무슬림 가장해 공화당 비판 유도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엔피아르>(NPR)의 기부금 모집 책임자 론 실러는 지난달 22일 워싱턴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기부 의사를 밝힌 남성 2명과 마주앉았다. 광고를 하지 않는 <엔피아르>는 지난해 2300만달러의 적자를 봤는데, 이들은 고맙게도 500만달러(약 56억원)나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무슬림 단체 회원이라고 소개한 큰손들에게 실러는 속을 털어놓는다. 그는 “지금의 공화당은 진정한 공화당이 아니며, 외국인 혐오주의자들(티파티 운동 지지자들)에게 납치된 상태”라며 “공화당은 반지성적”이라고 말했다. 티파티에 대해서는 “인종주의 성향이 정말 심하다”고 비난했다. 실러는 내친 김에 무슬림 단체 회원들의 비위를 맞추려는듯 “미국인들은 대부분 무식한데, 그들이 여론을 좌우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함정이었다. 그가 만난 것은 악명높은 ‘보수 행동가’ 제임스 오키페의 동료들이었다. 공영방송 간부가 특정 정당과 미국인들의 지적 수준을 매도하는 장면은 지난 8일 오키페가 운영하는 ‘프로젝트 베리타스’ 사이트에 올라왔고, 실러는 그제서야 몰래카메라에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의를 표했다. <엔피아르>는 즉각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된 미국 정치문화는 사태를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9일에는 <뉴욕타임스> 수석부사장 출신으로 2년간 <엔피아르>를 이끌어온 최고경영자 비비안 실러(사진)마저 옷을 벗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사건이 던진 파장이 큰 것은 <엔피아르>의 위상이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자유주의자 소굴’인 <엔피아르>나 공영텔레비전 방송 <피비에스>(PBS)에 대한 예산 지원을 끊어야 한다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엔피아르>는 예산의 2%만 정부 돈을 쓰지만, 이 방송의 프로그램들을 사는 수백 곳의 지역 라디오들은 예산의 10%가량을 정부에 의존한다. 론 실러가 “독립성을 강화하려면 정부 돈을 안 받는 게 낫다”고 말한 것을 동영상에서 포착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에릭 캔터는 “엔피아르는 납세자의 보조금이 필요없다고 자인했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서는 공영방송을 공격할 빌미를 찾으려고 사기적 행각을 서슴지 않는 오키페에게도 곱지 않은 눈길이 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동료들과 함께 전화 수리공을 가장해 메리 랜드류 상원의원(민주)의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붙잡혀 불법침입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피비에스>는 자사 수석부사장도 기부자로 꾸민 오키페의 동료들을 만난 적 있다고 9일 밝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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