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예산안 합의 이면엔
공공의료 등 ‘오바마 진보퇴색’ 도마
공공의료 등 ‘오바마 진보퇴색’ 도마
미국 백악관과 의회의 민주·공화 양당이 연방정부 폐쇄 시한을 1시간 남겨둔 8일 밤 11시께 2011 회계연도(2010. 10~2011. 9) 예산안 협상에서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인 385억달러 삭감에 극적인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파산 위기’라는 더 큰 쓰나미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미국 행정부 폐쇄 위기를 부른 근본원인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미 연방부채이다. 현재 부채액은 상한선(14조2940억달러)과 불과 수백억달러 차이다. 시한인 5월16일까지 상한선 인상이 안 될 경우 정부의 국채 발행이 불가능해지고, 7월8일이 되면 정부 부채에 대한 파산을 공식 선언해야 한다.
공화당 쪽은 부채상한선 인상 조건으로 예산지출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보험 혜택 삭감과 환경규제 완화, 낙태불허 강화 등이 핵심이다. 이미 공화당 쪽은 막판에 타결된 예산지출 삭감안을 1주일 동안 대체하는 임시예산안에서 낙태불허 강화 조항을 집어넣어 민주당 쪽의 격렬한 반대를 불렀다.
양당의 이런 견해 차이는 정부부채 상한선 인상을 둘러싼 더 큰 갈등과 대립을 예고한다. 제이피모건 체이스의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은 정부가 파산할 경우 회사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계획안을 마련했다며 “만약 누구라도 재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그 (정부 파산) 버튼을 누르기 원한다면, 그들은 미친놈들”이라고 비난했다.
더 큰 문제는 그 근원인 연방부채 삭감 방법이다. 공화당 쪽은 이미 향후 10년 동안 4조달러를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노령층 의료보장)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예산 등을 대폭 삭감하는 계획안에 입안한 2012년 예산안을 제출했다.
지출 삭감을 주도하는 공화당 내의 티파티 계열 의원들은 강경한 자세이다. 티파티의 도움으로 당선된 초선의원 믹 멀배니는 “우리는 이 부채상한과 관련된 진정한 구조적, 문화적 변화를 보기 원한다”며 “우리가 찬동할 수 있는 경기규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몇십억달러를 놓고 행정부 폐쇄 위기를 부른 이번 사태를 상기시키며 “민주당과 공화당이 몇년간에 걸친 수조달러를 놓고 몇주나 몇달 만에 어떻게 합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설사 합의가 이뤄져도 그 부담은 결국 서민과 중산층의 몫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사회 저변의 갈등과 불안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적인 나라 빚의 많은 부분은 조지 부시 정부 시절 고소득층 감세와 이라크전 등 지출 증가, 그리고 금융위기 수습을 위한 거대 월가 은행 지원 등으로 생긴 것이지만 이제 그 ‘청소’를 서민과 중산층이 떠맡게 된 것이다. 이미 올 예산안 삭감으로 공공의료 부문에서의 근본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게 돼 오바마 행정부의 진보정치 퇴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에서 초당적 조정자 역할에 더 충실했다”며 “지난해 총선 패배 이후, 그가 (진보에서) 중도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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