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2조1000억달러 증액 타결…재정건전성 ‘한계’
국방비 등 지출 10년동안 2조4000억 달러 줄이기로
공화 ‘벼랑 끝 협상’ 여론악화…오바마 재선에 유리
국방비 등 지출 10년동안 2조4000억 달러 줄이기로
공화 ‘벼랑 끝 협상’ 여론악화…오바마 재선에 유리
미국을 사상 최초로 부도에 이르게 할 뻔한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시한을 이틀 앞둔 31일 밤(현지시각) 타결됐다. 미국이 디폴트 공포에서 벗어나 세계 금융시장도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이번 일로 빚더미에 앉은 미국의 딜레마와 자기 파괴적 분열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양당 지도부는 적자를 줄이고, 우리 경제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디폴트를 회피하는 방안에 합의했다”며 협상 타결 사실을 발표했다. 전날에도 밤늦게까지 담판을 벌인 조 바이든 부통령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31일 11시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부채 한도 증가액과 지출 삭감액을 비슷하게 잡은 타협점에 이르렀다. 3개월여간 표류하던 협상은 2일까지 부채 한도를 늘리지 못하면 정부가 디폴트에 빠지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결말을 봤다.
1일 중으로 예상되는 의회 표결로 합의가 효력을 얻으면 현재 14조3000억달러(약 1경5005조원)인 연방정부 부채 한도는 2조4000억달러 정도 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이만큼 돈을 더 꾸면 2013년까지 부채 원금과 이자를 갚으며 나라 살림을 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화당은 대신 10년간 2단계에 걸쳐 정부 지출을 2조4000억달러 이상 줄이기로 하는 양보를 얻어냈다. 1단계로 9000억달러를 삭감하고, 2단계로는 민주·공화 양당이 동수로 구성하는 특별위원회가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지출 삭감 내용을 정하기로 했다. 지출 축소에는 국방비 삭감액 3500억달러가 들어 있다. 양쪽은 또 균형 재정을 헌법에 명시하는 의회 표결을 올해에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합의안은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하는 부채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거리가 멀다. 액면대로 보면 부채 한도를 올린 것이라 오히려 빚이 증가한다. 빚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미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정 한도를 꽉 채운 미국의 정부 부채를 가구 수로 나누면 약 16만달러인데, 미국 가구들은 사적으로도 그만큼 평균 부채를 안고 있다. 둘을 합치면 가구당 32만달러(3억3000만원)가량 공·사적 채무를 진 셈이다. 지출을 줄일 뿐 아니라 세금을 더 거둬야 재정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데도 이번 합의안에 증세는 포함되지 않았다.
어쨌든 벼랑까지 한발짝만 남겨놓고 타결된 협상 결과에 공화당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백악관을 끈질기게 괴롭히며 하원을 장악한 힘을 보여줬고, 협상 결과도 자신들 입장이 더 반영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작은 정부라는 우리의 원칙에 부합되는 결과”라며, 증세나 지출 증대를 막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는 또 지출 감소 폭이 부채 한도 증가분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게 내가 원한 협상 결과냐? 아니다”라는 자문자답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내년 대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공화당이 협상을 벼랑 끝까지 몰고갔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들의 목소리와 편지, 이메일, 트위터가 마지막 순간에 워싱턴을 움직였다”며 ‘시민 대 공화당’이라는 구도를 강조했다. 결국 ‘오바마에게 유리한 공화당의 승리’라는 평가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