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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국의 몰락’ 시작됐나?

등록 2011-08-09 17:10수정 2011-08-09 18:06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사가 2011년 8월5일 미국 정부의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최상급에서 한 단계 아래로 낮춰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줄곧 세계 최강국 자리를 지켜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린 사건이다.

 미국의 역사는 동서양의 유수한 국가들에 비하여 짧다. 종교적 박해를 피하여 이주한 청교도가 시초가 되었으나 대부분의 이주민은 ‘자유’와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미국에 왔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하면서 1776년 7월4일 <독립선언문>을 통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천부적인 인권을 가진다”고 선포했다. 미국을 흔히 ‘용광로’라 부르는 것도 미국에 이주한 다민족이 서로 합쳐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이 19세기에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을 강제로 이주시킨 것은 그러한 이념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흑인 노예 해방문제로 남북이 대립하면서 약 62만명이 사망하는 비참한 내전도 겪었다.

 미국은 독립 후에도 스페인, 멕시코 등과 전쟁을 하면서 영토를 확장했다. 그리고 일본인에 ‘흑선’이라고 불린 큰 전함을 보내서 개항을 강요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 세계의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국내 문제를 중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마지막에야 연합군에야 참전하고도 미국 상원이 베르사유 조약에 비준을 거부할 정도로 국제적인 역할에 소극적이었다.

 미국 내부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경제적 기회’를 준다는 자본주의는 실제 많은 문제를 보였다. 19세기 말에 철도 및 석유회사의 독점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자 ‘독점규제법’을 제정했던 사례나 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2007년 말의 금융위기 상황을 보면 미국의 자유시장경제가 항상 ‘자율적’으로 작동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장기간의 소모전에서 전시 물자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에서 앞서는 국가였다. 전쟁중에 여자들이 군수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의 길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찍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이나 다른 국가들의 경제회복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군사력이나 경제력 및 외교적인 모든 면에서 명실공히 세계 최강국이 됐다.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 자본주의가 미국 국민에게 수십년간 다른 나라 국민이 부러워할 만한 풍요와 자부심을 준 것은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전성기를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라고 한다. 경제적인 풍요는 출산율 증가로 이어져 이 기간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가 태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역량은 지나치게 장기화된 베트남 전쟁을 겪은 이후부터 급격하게 위축됐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러 영화가 있으나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문제의식을 보여준 영화는 ‘디어헌터’가 아닐까 한다. 영화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낮에는 제철소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선술집에서 친구끼리 맥주를 흥겹게 마신다. 여자친구와 연애도 하고 주말에는 부근의 산에서 사슴 사냥도 한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어 전쟁터에 다녀오고 나서는 모든 것이 바뀐다. 전쟁에서 생사의 위험한 순간을 겪으면서 고향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도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는 것이다. 친구들이 다시 모여 사슴 사냥을 나갔다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당기지를 못하고 멈춘다. 사슴이 전쟁터의 전우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미국의 정치·사회에 대한 회의와 젊은이들의 정신적 방황을 심각하게 했다. (최근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정신적인 고통도 심하다.) 전쟁 장기화로 미국 사회의 분열은 심각해졌고 사회기강은 해이해졌다. 베트남 전쟁의 확전을 시도하던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중도 사퇴한 후 진보적인 카터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경제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였고, 이란에서 인질사태를 겪는 등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는 추락했다.


 미국에서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의 평가는 후하다. 비록 배우 출신이지만 국민에게 용기를 줬고,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직접적인 원인이긴 하지만 미·소 냉전에서 승리를 이끌었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나는 레이건이 미국의 몰락을 주도했다고 본다. 소위 ‘레이거노믹스’라는 세금을 깎아 주면 경제가 활성화되어 세수가 더 걷힌다는 검증되지도 않은 이론을 바탕으로 세금을 줄이고 국제적인 역할을 강조해 방위예산을 늘린 것이 결국 지금까지 미국이 안고 있는 ‘해결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재정적자’의 시작이다. 당시 레이건의 처방은 당장은 달콤했지만 후손들에게 큰 짐을 준 셈이다.

 1980년대 후반에는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인식해 이를 줄이려는 노력도 있었다. 모든 분야의 지출을 일괄적으로 10%씩 줄이는 ‘그램러드만 홀링스법’ 덕분에 대학에 지급되는 정부의 연구비가 줄어들어 고생했던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비록 임기 말년 성추문 등의 개인적 문제가 있었지만 클린턴 대통령이 연임하는 동안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닷컴 바람이 분 것도 그의 임기중이었다. 경제 활성화 덕분에 재정적자 문제가 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지만 해외 무역수지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의 임기 중에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헤지펀드 등의 규제를 미룸으로써 잠재적인 부동산과 금융계의 거품을 키웠다.

 클린턴 이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지 부시 2세의 임기가 시작된 직후인 2001년 9월11일 뉴욕에서 테러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공항 검색이 강화되어 여행이 불편해진 것은 물론 사회 전체가 안전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 국민의 감정에 부응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주범으로 지목된 알 카에다 일당이 은신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대량학살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구실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걸프전’을 치렀지만 이 전쟁의 구실은 쿠웨이트를 침략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고, 어디까지나 유엔이 주도하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도한 2003년 이라크 침공은 대량학살무기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벌인, 명분이 부족하고 무모한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의 군사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갔지만 전쟁으로 미국이 얻은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도 없다. 그래서 최근 미국인들은 이러한 ‘세계경찰’ 역할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미국은 리비아 카다피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말 부동산 담보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상품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금융시장에 큰 위기가 왔다. 거대한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에이아이지 같은 대형 보험사, 패니매 같이 부동산 담보를 재담보하는 회사들이 미국인들의 혈세로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금융당국의 적극 개입으로 위기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로부터 4년 후 눈덩이처럼 늘어난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안을 놓고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과 오바마 대통령 소속의 민주당이 대립하다가 거의 미국 정부가 지급정지 직전까지 갔다. 끝에 가서 극적인 타협안에 합의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재정지출을 줄이는 데에는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세수를 확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즉, 내년 대선을 의식해 증세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유명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사는 미국정부채권의 신용도를 낮췄다. 미국 재정 현금흐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치권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보다는 최근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합의된 재정지출 축소안이 이미 실업률은 높고 전반적인 경기상황마저 좋지 않은 미국 경제를 디플레이션과 경제규모 축소를 동반하는 ‘이중침체’(double-dip)’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크다. 즉 신용등급 강등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에 합의된 재정적자 축소안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전 세계 정치·경제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나 팝 음악을 통해 문화까지 주도했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최첨단을 달렸다. 소련이 1958년 먼저 유인우주선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자 미국은 달에 인간을 착륙시키는 쾌거로 맞받아쳤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일부 분야와 의료제약 분야를 제외하고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이미 기술적인 혁신에서도 뒤지고 있다.

 사실 금융산업의 탐욕이나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악화’에 있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기업에 실질적인 대주주가 없다는데 있다. 전문경영인이 주가나 단기 실적에 연동한 과도한 보너스를 기대하면서 ‘단기적인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장기적인 경쟁력을 잃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후 금융개혁을 시도하고 단기 보너스를 줄이면서 지구온난화에 따르는 그린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재정적자 처리 문제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번 합의로 제대로 된 재정적자 축소 방안이 나올 수 없었던 이유다.

 정리하면 미국의 경제가 몰락하고 있는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베트남 전쟁 이후 사회가치관 혼란
 2. 레이건 시절 시작된 무분별한 감세
 3.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전문경영인과 금융계의 근시안적 경영
 4. 테러와의 전쟁에 쓰이는 과도한 방위비
 5.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내년 대선을 의식한 불완전한 재정지출 축소안

 그렇다면, 미국은 희망이 없이 몰락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미국은 아직도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서 있고 국민의 준법정신도 투철하고 애국심도 강하다. 잘못된 부분을 고치면 희망이 있다고 본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도 최근 합의된 재정지출 축소안의 미흡함 때문이라고 본다.

 아프가니스탄 등에 쏟아붓는 막대한 방위비보다 더 큰 문제는 세수부족이다. 미국의 부자들이나 기업들이 기부나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경영자들의 보너스는 줄이거나 세율은 높이고 서민층에게 혜택이 더 가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장기적인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사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 미국은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 국민총생산이나 구매력 분야에서 20%를 차지할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수입국이다. 즉, 미국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중침체’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재정지출 축소안을 골자로 하는 이번 합의를 재합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자.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 정책을 보면 자화자찬 일색이다. G20 회의 주최를 계기로 국격이 올라간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2007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와 최근의 위기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위험도가 높은 자산으로 평가되면서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환율이 폭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작은 국가인 스위스는 이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외국인들의 자산이 몰려 환율이 하락한다고 한다. 자화자찬을 하려면 스위스 정도가 되고 나서 했으면 한다.
 (☞ 참고글 http://blog.hani.co.kr/shkong78/31436)

 그런데 대한민국은 토목공화국이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의 육성과 청년실업 해결에 앞장서기보다는 겉으로 생색을 내기 쉽고 수주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특혜를 주기 쉬운 대규모 토목공사에만 힘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운하사업의 이름만 ‘4대강 살리기’로 바꾸고 20조 이상을 투입하면서 원래 운하건설 목적인 보와 대규모 준설 그리고 주변 개발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을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뒤늦게 지류정비 사업을 하겠다고 20조 이상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한다. 서울시장으로 재선된 오세훈도 시민 복지나 지구온난화현상에 따라 우려되는 폭우 등의 기상재해에 대한 대비는 등한시하고 ‘디자인 서울’ 등 겉모양 내는 데에만 지출을 집중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보면서 대한민국도 국민이 낸 세금을 장기적인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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