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온 ‘서머워크’ 교환학생들 “공장서 중노동” 항의 시위
“우리는 누구인가? 자랑스러운 제이원(J-1) 학생들.”
세계적인 초콜릿회사 허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허시시의 ‘허시 이야기 박물관’ 앞에서 18일 어눌한 억양의 영어 구호가 울려 퍼졌다. 150여명의 청년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대부분 중국, 터키, 동유럽 등에서 제이원 비자(단기 교환연수 비자)를 발급받아 온 대학생인 이들은 왜 시위에 나섰을까.
이들은 모두 ‘서머워크’라는 단기 문화교환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왔다. 이 프로그램은 몇달 동안 인턴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미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미 국무부에서 마련한 것으로, 참가자는 제이원 비자를 발급받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2008년 합의한 ‘웨스트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제대로 된 일터에서 미국인과 친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학생들 앞에 놓인 일은 하루 종일 시간당 8달러에 무거운 초콜릿 상자를 포장하고 운반하는 일이었다. 미국인을 만날 기회는 가끔 관리자가 들어와서 “빨리빨리 해”라고 외치거나 “일 제대로 못하면 자기 나라로 쫓겨나게 될 거야”라며 으름장을 놓을 때뿐이었다. 시위에 나선 중국 학생 펑루(21)는 “하나에 24㎏이나 되는 상자는 너무나 무거워 들 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이 지역에 있는 4곳의 포장회사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400여명의 교환학생이 일하고 있다.
이들을 데려온 중개회사인 미국교육여행위원회 릭 아나야 대표는 “항상 쉽지만은 않았던 이 경험이 학생들로 하여금 세계와 미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뻔뻔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영어를 배울 기회는 시위를 위해 영어 구호를 만들 때 정도뿐이었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 서머워크 프로그램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 <에이피>(AP) 통신은 16개국에서 온 70여명을 인터뷰한 뒤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해놓고 스트립바에 취직시키거나 세칸짜리 방에 30여명을 숙식시키는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제이원 비자로 미국에 들어오는 학생은 매년 10만명인데, 이들을 고용한 기업들은 연방세를 감면받을 수 있어 악용 사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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