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복역·세차례 연기 끝에 ‘독극물 주사’ 투입
피해 유족에 “총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언
“미 법체계 흔들릴 것” 사형제 폐지 전환점 예상
피해 유족에 “총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언
“미 법체계 흔들릴 것” 사형제 폐지 전환점 예상
트로이 데이비스(43)는 자신의 사형 집행을 지켜보기 위해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마크 맥페일의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형을 집행할 교도관들에게 말했다. “신이 당신들의 영혼에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랍니다.”
세 번의 사형 집행 위기를 넘기며 22년 동안 복역해온 사형수 데이비스는 침대에 묶인 채 독극물 주사를 맞은 지 5분 만인 21일 밤 11시8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수년 동안 전세계를 들끓게 만들었던 트로이 데이비스의 사형이 결국 집행됐다. 사형이 집행된 미국 조지아주 잭슨시 주교도소 주변에 몰려든 시위대 700여명과 유럽 각국은 비탄에 잠겼다. 미국에선 또다시 사형 집행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트로이 데이비스는 1989년 8월 조지아주 서배너시의 버거킹 매장에서 비번 시간에 경비원으로 일하던 27살의 백인 경찰 맥페일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맥페일은 버거킹 주차장에서 벌어진 다툼에 말려들었다가 심장과 머리에 총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당시 20살의 실업자 흑인이었던 트로이 데이비스는 현장 목격자들에게 범인으로 지목됐고, 1991년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 그를 지목한 목격자 9명 중 7명이 애초 증언을 철회했다. 경찰의 강압적인 태도에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는 데이비스와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사형 집행은 세 차례나 연기됐다. 연방대법원은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사형수에게 재심 기회를 줬다. 하지만 지난 3월 “사형 판결을 번복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가 변호인에게 “데이비스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예정된 결과였다.
그사이 그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은 전세계를 휩쓸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교황 베네딕토 16세, 힙합 가수 피 디디 등 저명인사들도 그의 재판을 다시 열 것을 탄원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추진한 탄원서에는 10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시민들은 21일 ‘나는 트로이 데이비스다’를 외치며 대법원과 백악관으로 행진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의 사형 집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형 집행이 이뤄진 뒤 유럽 각국은 미국을 성토하고 나섰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날 “수많은 요청에도 사형이 집행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밝혔고, 독일 인권담당 차관 마르쿠스 뢰닝은 “그의 유죄 판결에는 엄청난 의혹이 남아 있다”며 “사형 집행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의 래리 콕스 인권그룹 국장은 “결백할 수도 있었던 사람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것은 미국 사법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번 집행이 미국의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사형 집행이 이뤄진 뒤 유럽 각국은 미국을 성토하고 나섰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날 “수많은 요청에도 사형이 집행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밝혔고, 독일 인권담당 차관 마르쿠스 뢰닝은 “그의 유죄 판결에는 엄청난 의혹이 남아 있다”며 “사형 집행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의 래리 콕스 인권그룹 국장은 “결백할 수도 있었던 사람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것은 미국 사법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번 집행이 미국의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