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의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 포스터.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새겨진 벤자민 프랭클린이 얼굴에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가이 포크스는 1605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를 살해하려던 ‘화약음모 사건’에 연루돼 처형당한 인물로, 2005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재조명을 받으며 최근 전세계 99%의 시위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제공
5일은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금융권 탐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로 정한 날이다. 월가 시위대가 지난 9월29일, 대형 은행의 계좌를 5일까지 지역의 소형 은행이나 주정부 및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신용협동조합 등으로 옮기는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한달여 만에 신용협동조합에 65만명의 신규 계좌가 늘어났다고 신용협동조합 위원회가 이날 밝혔다. 이를 통해 신용협동조합에는 45억달러(5조130억원)가 새로이 계좌에 편입했다.
이처럼 월가 시위대의 목소리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호소하는 월가 시위대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데다, 특히 대형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내년부터 직불카드에 매달 5달러의 수수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한 영향도 크다. 실제 지난 9~10월 신용협동조합의 신규계좌 개설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8%나 늘어났는데, 새로이 늘어난 계좌의 상당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넘어온 소비자들이다. 시티그룹, 제이피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등 다른 대형 은행들도 최근 몇 주 동안 계좌 폐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금융 쪽의 소비자 운동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대형 은행들의 계좌 폐쇄가 이어지고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결국 직불카드 수수료 부과 입장을 철회한 것은, 월가 점령 시위가 구체적이고 합법적으로 거둔 첫 ‘전리품’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로스앤젤레스의 자영업자인 크리스텐 크리스티안(27)은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 계좌를 폐쇄하고, 신용협동조합에 두 개의 계좌를 개설했다. 그는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깨어나고 있고, 우리가 선택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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