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이사람] 펄펄 뛰는 뉴스로 파라과이 아침을 깨우다

등록 2011-11-18 19:37수정 2011-11-18 20:46

파라과이 민영방송 ‘채널9’ 한국인 앵커 욜란다 지경 박
파라과이 민영방송 ‘채널9’ 한국인 앵커 욜란다 지경 박
파라과이 민영방송 ‘채널9’ 한국인 인기 앵커 욜란다 지경 박
2살때 이주…아버지 고향은 부산
한·일 월드컵 활약 뒤 앵커에 발탁
“한인 인정하는 분위기에 한몫 뿌듯”
 “한국인이세요? 반갑습니다~”.

 스페인어 억양이 물씬 풍기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던 욜란다 지경 박(31·사진)의 입에서 갑자기 억센 부산 억양이 섞인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대만정부가 지난주 대만의 양성평등 정책 추진상황을 알리기 위해 초청한 전세계 8개국 12명의 기자 및 여성단체 대표들이 처음 인사를 나눈 자리에서였다.

 박씨는 파라과이에서 가장 역사가 긴 최대 민영채널(국영 티브이는 올해 처음 시작됐다)인 <채널9>의 인기앵커. 3명의 남성 파트너가 바뀌는 10년 가까이, 그는 새벽 5시반부터 9시까지 진행되는 아침뉴스 앵커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이 방송의 아침, 낮, 저녁 메인뉴스의 앵커 6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1982년, 2살이던 그는 두 언니와 부모님과 함께 중남미 내륙국가 파라과이로 갔다. 부산 출신의 아버지는 신문에서 정부가 칠레와 파라과이 농장에서 일한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찾아갔다고 한다. 수도 아순시온에서도 200㎞ 떨어진 낯선 땅, 낯선 농장에서 그의 부모는 일을 시작했다. 몇년 뒤엔 아예 할아버지 할머니가 건너와 아순시온에서 따로 손주들을 데리고 지냈다. “부모님은 1주일에 한번 집에 오고, 힘든 나날이었죠. 할아버지의 엄격함 덕에 공부들은 열심히 했어요.” 두 언니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와 파라과이에서 각각 의사와 치과의사 일을 하고 있고, 파라과이에서 태어난 남동생은 엔지니어다.

 대만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면 나오는 지구편 정반대의 중남미 내륙국, 인구 700만명의 파라과이에서 한국인인 그가 방송국에서 일한 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언론학을 전공하던 대학 재학당시 선거보도에 학생기자를 한 인연으로 라디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월드컵 때 쏟아지는 한국어 영상을 번역할 사람을 찾던 방송국이 연락을 해왔어요.” 번역과 기자생활을 하던 그는 2003년엔 아침뉴스 앵커로 전격 발탁됐다. “원래 앵커가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고 갑자기 그만뒀어요. 라디오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월드컵으로 방송일을 한 것도, 앵커가 된 것도 모든 게 정말 난 운이 좋은 것 같아요.(웃음)”

 절대 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나가면 ‘네 데스펜사(한국사람들이 주로 하는 작은 가게)는 어디냐’는 질문도 받는 등 차별적 시선도 적잖았다. 하지만 활기넘치고 시원시원한 성격대로 “펄펄 뛰어다니는” 그의 보도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뭔가 절 보면 거짓말이 없는 것 같대요.” 휴대전화, 가전제품 등의 시에프도 하고 있는 그는 최근엔 올해 태어난 아들 덕분에 기저귀 광고도 찍었다.

 파라과이에 있는 현재 한국동포는 2000명 정도.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2세들이 많아졌다. “이전에도 전문직들이 없진 않았죠.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가게만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제가 언론에 종사하면서 파라과이인들이 한국인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그게 가장 자랑스러워요.”

 아순시온에서 브라질 상파울루, 미국 시카고, 일본 도쿄를 경유해 타이베이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38시간이라 했다. 아시아 국가 방문이 처음이라는 그는 이번에도 한국 바로 옆까지 날아오고도 오지 못했다. “어렸을 땐 돈이 없었고, 이제는 시간이 없고. 너무 가보고 싶긴 하죠.”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닌 두 언니들의 경험은 박씨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언니들이 한국에 가서 중남미, 특히 파라과이에서 왔다고 하면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울면서 다시 파라과이에 오고 싶다고 했어요.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도 똑같은 한국인이라는 것. 그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타이베이/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