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가주의’ 탄생지 찾아 ‘중산층 복원’ 연설
“불평등 확대로 점령시위”…부자증세 반대 겨냥
“불평등 확대로 점령시위”…부자증세 반대 겨냥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후광을 받으려고 시도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45년) 전 대통령이 아니라 공화당원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재임 1901~1909년) 대통령이 그가 본받겠다고 선언한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6일 캔자스주 오사와토미의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중산층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 온 힘을 쏟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인구가 4500명에 불과한 소도시인 오사와토미는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경제정의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신국가주의’를 주창한 곳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시간여에 걸쳐 소득 불평등 확대와 중산층 붕괴를 소재로 연설하면서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약속이 거짓말이 돼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또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올리고, 상당액을 저축할 수 있고, 집을 소유하고, 퇴직금을 보장받는” 중산층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공화당이 임금생활자 감세와 부유층 증세를 가로막는다고 비난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이 연설이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포퓰리즘적인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상위 1%가 경제 성장의 열매를 거의 독식한다고 비판한 대목은 ‘점령하라(오큐파이) 운동’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는 불평등 확대가 “티파티나, 뉴욕 등 여러 도시의 거리를 점거한 이들의 시위와 정치적 운동을 불러일으켰다”며 ‘점령하라 운동’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텃밭인 캔자스주의 오사와토미를 연설 장소로 택한 것은 이번 연설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에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이었고 무력에 의존하는 대외정책을 추구했으나 국내정책에서는 반재벌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다. 퇴임한 이듬해에는 오사와토미에서 “자신들이 일하는 것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들과 자신들이 소유하는 것 이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 바로 진보라는 내용의 유명한 연설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루스벨트는 당시에는 이 말 때문에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어 공산주의자로 불렸다”며, 이념 공세에 굴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오바마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무엇이 닮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촌평을 내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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