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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월가 점령 시위, 앞으로 몇년동안 계속될 것이다”

등록 2012-01-02 21:35수정 2012-01-02 22:30

칼레 라슨  편집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월가 점령’ 시위의 방향과 자본주의의 폐해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밴쿠버/권태호 특파원
칼레 라슨 편집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월가 점령’ 시위의 방향과 자본주의의 폐해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밴쿠버/권태호 특파원
인터뷰 ‘오큐파이 월스트리스’ 첫 제안한 애드버스터스 편집장 칼레 라슨
지난해 하반기 전세계를 뒤흔든 가장 큰 움직임은 “우리는 99%다”라는 외침으로 상징되는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령) 시위의 확산이었다. 이 ‘월가 점령’이라는 용어와 아이디어가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 기반을 둔, 상업주의에 반대하는 잡지 <애드버스터스>의 편집장 칼레 라슨(70)에게서 나왔던 점은 흥미롭다. 그가 온라인에 내놓은 제안이 미국인, 나아가 전세계인들에게 울림을 준 것은, ‘1%의 탐욕’에 대한 분노가 광범위하다는 점을 증명함과 동시에 시민의 힘이 국경을 넘어 조직되는 시대가 본격 도래했음을 알린 것이다. 소셜네트워크(SNS)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제안들이 즉각적으로 서로를 자극하고 움직이는 시대라는 뜻이다. ‘월가 점령’ 시위가 “이제 시작”이라며 “2012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월가 점령’ 시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를 지난달 캐나다 밴쿠버의 애드버스터스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다.

정치권·기업 결탁으로 부패
내 제안은 스파크 일으킨것
아마 올 1월 각 대학서
대규모 시위 일어날수 있어

-‘월가 점령’ 시위가 전세계를 휩쓸었다. 예상했나? 이렇게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상황은 이미 무르익었고 나의 제안은 스파크를 일으키게 했을 뿐이다. 거의 모든 나라 정치권이 기업들과의 결탁으로 부패해 있다. 거의 모든 전세계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을 얻을 수도, 학자금 빚을 갚을 수도, 집을 살 수도, 부모들처럼 살 수도 없게 됐다. 싸우지 않으면 자신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이 깨달았다. 이 운동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폭발할 수 있었던 이유다.”

-뉴욕 주코티 공원의 시위대들은 ‘혁명’을 외친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랍의 봄’과 같은 혁명이 일어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정권을 타도한 이집트와는 다르지만 미국도 일종의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 워싱턴은 기업·로비스트·정치인들이 결합돼 있다.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이다. 일상생활을 보라. 음식, 신발, 음악, 뉴스, 우리가 향유하는 거의 모든 것을 2~3개 거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기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톱다운’(하향식) 기업국가가 됐다. 200여년 전 미국이 출발할 때 품었던 아래로부터의 ‘보텀업’(상향식) 민주주의는 사라진 꿈이 됐다.”

-월가 시위가 이제 동력을 잃었다는 주장도 많다.


“동의하지 않는다. 뉴욕시장이 군사작전 벌이듯 시위대를 쫓아내 이 운동의 첫 장이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공원을 점거하고, 날마다 총회를 여는 것은 힘들다. 2012년 점령시위의 전쟁터는 대학 캠퍼스가 될 것이다. 아마 (대학이 개강하는) 1월에 각 대학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공원, 캠퍼스를 넘어 기업 본부를 점령할 것이다. 나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을 좋아한다. 늘 이처럼 할 것이다. 나는 이 운동이 1968년 운동처럼 폭동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고 그런 상황으로 전개되길 원치 않고, 그렇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운동은 2012년 이전보다 더 흥미롭게 진행될 것이다.”

1968년 운동처럼
폭동 일어나고 사람 죽고…
그렇게 되리라 생각안해
더 흥미롭게 진행될 것

-어떤 이들은 ‘월가 점령’ 시위가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득을 줄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오큐파이어’들은 오바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를 너무도 크게 실망시켰다. 우리는 그를 열정적으로 지지했지만, 그는 당선되자마자 다음 선거를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묵인했고, 진정한 의료보험 개혁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적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친구가 우리를 실망시킬 때 이를 받아들이는 건 힘들다. 많은 젊은이가 선거에서 오바마와 밋 롬니 중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면, 결국 오바마에게 표를 던질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번 같은 열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당신은 제3당을 제안했나? 당신이 제안하는 제3당이란 진보당인가?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를 선택하는 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중 하나를 택하는 것과 같다. 둘 다 거의 똑같다. ‘오큐파이어’들 중 ‘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 중 일부가 제3당을 주창하기도 한다. 제3당은 진보정당이라기보단,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통합(하이브리드)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제3당을 얘기하는 게 한낱 꿈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언젠가 어쩌면 바로 내일,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경제적 고통이 점점 심해진다면, 제3당의 실현도 점점 빨라질 것이다.”

-월가 점령 시위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줬다. 전세계의 진보 운동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나?

“내가 젊었을 때 정치적 좌파 운동이란 강력한 이상주의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1968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좌파 혁명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그런데 소련 붕괴 이후 그 생명력이 풍선 바람 빠지듯 ‘슈욱’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후 좌파란 투덜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좌파는 어떤 것도 바로잡으려 하진 않고, 엄청나게 (사회현상을) 분석, 분석만 한다. 그런데 갑자기 주코티 공원에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분석에서 행동으로 돌아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심장을 점령했다. 이제 부자세(로빈후드세)를 실현해야 하고, 부패 구조를 바꿀 것이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죽은 좌파의 시체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만 했는데, 이제 이를 행동에 옮긴 것이다. ‘젊은 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터넷 문화에서 자란 젊은이들, 이 ‘신좌파’들은 이전 좌파와는 다르고, 이전 좌파가 갖고 있지 못했던 인터넷이란 무기, 마술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운동이 오는 봄 다시 나타날 것이고, 앞으로 몇 해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본다.”

얼마전 사람들은 말했다
젊은이들이 싸울 수 있을까
이젠 누구나 싸우겠다 말해
사람들이 달라졌다

-월가 점령 시위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아니, 세상은 달라졌다. 1968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큰 폭발이 일어났는데, 끝나고 나니 달라진 건 없다’고. (월가 점령 시위 이후에도) 자본주의, 기업 권력, 월스트리트, 워싱턴, 다 그대로다. 그러나 사람들이 달라졌다.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싸울 수 있을까?’라고. 하지만 이젠 누구나 ‘나는 싸우겠다’고 말한다.”

-투쟁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인가?

“싸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폭력도 투쟁의 한 방법이지만, 마하트마 간디의 방법도 투쟁의 일종이다. 로빈후드세, 미국의 제3당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강력하고 창의적인 방법도 있다.”

밴쿠버/글·사진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이렇게 작은 곳이 세상을 흔들었나…

캐나다 주택가 2층집 직원 7명이
상업주의 반대 잡지 제작…
지난해 “9월17일 월가 점령하자”
이메일 보내 ‘대사건’ 촉발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애드버스터스>는 시내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은 2층짜리 일반주택을 개조한 것이다. 그래서 애드버스터스를 처음 찾았을 때 ‘이렇게 작고 평범한 곳이 세상을 흔들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적잖이 당황했다. 직원은 모두 7명이다. 반상업주의를 표방하며 유명 광고를 비틀고 뒤집는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애드버스터스>는 광고 없이 오로지 구독료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편집장인 칼레 라슨은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나 독일 피난민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라나, 1960년대 일본에서 시장조사 전문회사를 세워 많은 돈을 벌었고, 1970년 캐나다로 이민 와 밴쿠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동전을 넣어야 카트를 빼낼 수 있는 규정에 갑자기 소비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1989년 <애드버스터스>라는 상업주의 광고를 비판하는 격월간지를 창간했다. 현재 약 7만부가 발행되며, 한국에도 ‘7명’의 정기구독자가 있다. 라슨은 이집트 민주화 운동을 보며 “미국에도 타흐리르(해방) 광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샌프란시스코와 영국 런던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하며 ‘월가를 점령하라’, ‘우리는 99%’라는 구호와 아이디어 등을 다듬었다. 그리고 지난해 7월13일 애드버스터스와 네트워킹이 돼 있는 전세계 9만명에게 “9월17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라는 전자우편을 보내면서 월가 점령을 촉발했다. 애드버스터스가 디자인한 월가를 상징하는 황소상 위에 올라탄 발레리나 포스터는 비폭력과 ‘우아한 저항’을 상징한다. 애드버스터스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로렌 베르코비치는 “우리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연락하고, 긴급요구에 응대하는 등 이곳 밴쿠버에서 뉴욕 주코티 공원 시위대의 지원본부처럼 움직였다”면서도 “그러나 월가 시위는 애드버스터스가 아닌 시위대의 것이고, 앞으로 시위가 어떻게 나아갈지도 시위대가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밴쿠버/권태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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