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46명 ‘미국 안보 위협’ 분류 무기한 구금
국제법·인권법 무시…재판받을 기회도 안 줘
물고문·성적학대 등 악행 자행…‘인권블랙홀’
국제법·인권법 무시…재판받을 기회도 안 줘
물고문·성적학대 등 악행 자행…‘인권블랙홀’
“미국 정부가 우리를 영원히 가둬두려는 것 같다.”
알카에다 조직원이라는 혐의로 관타나모수용소에 붙잡혀 있는 예멘 출신의 술레이만 알나흐디(38)는 최근 변호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절망감을 표현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0일 전했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45명과 함께 무기한 감금 대상자로 분류된 알나흐디는 평생을 미군 감옥에서 보낼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져있다. 그에게는 재판을 통해 자신이 정말 알카에다 조직원인지를 따질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저지른 반인권 행태의 상징인 관타나모수용소가 11일 ‘개소 10돌’을 맞는다. 숱한 지탄의 대상이 돼온 관타나모수용소는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되고,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또한 종전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반인권의 상징으로 남을 태세다.
관타나모수용소는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 1월11일 아프간전 관련자 20명이 이곳에 수감되면서 악명을 떨칠 준비를 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전과, 이후 이라크전을 치르면서 세계 각처에서 붙잡은 이슬람 테러조직 가담 용의자들을 이곳에 모으기로 결정했다. 1903년 미군이 당시 쿠바를 지배하던 스페인 군대를 격파한 뒤 해군 기지를 설치한 천혜의 요새로, 테러 용의자들을 미국 본토에 들이지 않고 감시·처벌하는 데 적소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관타나모는 이후 현존하는 어떤 구금시설도 능가하는 국제적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국제법 및 인권법의 조항과 그 배경에 있는 상식, 개별국 주권 등이 철저히 무시됐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각국에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테러 용의자들을 ‘납치해’ 관타나모로 보냈다. 부시 행정부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은 제네바협약의 적용을 받는 적군 포로가 아니라 ‘불법적 적 전투원’일 뿐이라며 국제법을 무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태도는 공공연한 고문으로 이어졌다. 잠 안재우기, 물 고문, 성적 학대, 군견으로 위협하기 등 갖은 고문이 가해졌다. 미국 국방부는 아예 ‘고문 매뉴얼’까지 내려보내 가혹행위를 조장했다. 또다른 문제는 수감자들에게 체포의 적법성도, 죄의 유무도 따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미국 법원에서 여러차례 공격을 받아 다소 교정됐지만, 미국 정부는 관타나모에 특별군사법정을 설치하면서까지 수감자들이 미국인들처럼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을 막았다.
관타나모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으로 한때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그는 취임하면 1년 안에 이 수용소를 폐쇄하고 수감자들을 미국 민간법정에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2009년에는 수감자 중 가장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9·11테러 주모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민간재판에 세우기로 하면서 이 구상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의회를 비롯한 보수세력의 반격으로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마지막 날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민간법정 회부를 원천적으로 막는 내용이 들어간 국방수권법에 서명해 최종적으로 공약을 저버렸다.
수감자들 쪽과 인권단체들은 관타나모수용소가 무관심 속에 영원히 ‘인권의 블랙홀’로 남을 가능성을 걱정한다. 알제리 출신으로 적신월사에 근무하다 보스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 음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쓰고 관타나모에서 7년을 복역한 라크다르 부메디엔은 “관타나모는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171명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기 때문에 내 얘기를 전하려 한다”며 지난 8일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실었다. 그는 “단 1초”도 테러를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7년이나 갇혀 있었다며, 관타나모가 존재하는 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관타나모수용소 10돌 보고서에서 “관타나모는 과거의 학대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인권 원칙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계속되는 것을 상징한다”며 즉각적 폐쇄를 요구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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