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우선 강화’ 일환인 듯
병력 순환배치 형태 등 전망
병력 순환배치 형태 등 전망
미국이 필리핀에서 군사력을 증강하기로 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6일 보도했다. 20년 전 쫓기다시피 필리핀을 떠난 미군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다시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과 필리핀 정부가 필리핀에서 미군 전력을 증강하는 방안에 의견을 접근시키고 있다며, 3월에 고위급 회담에서 결론이 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군 함정이 필리핀을 근거지로 작전을 벌이거나 미군을 순환 배치하는 것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 군대의 연합훈련 확대도 거론된다.
미국이 필리핀 주둔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우선순위를 둔 새 국방전략과 맥이 닿는다. 미국은 지난해 말 오스트레일리아 다윈 기지에 해병대 2500명을 주둔시키고 싱가포르에는 최신예 전함을 배치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가 중국 봉쇄선의 후방이라면 필리핀은 ‘전방’에 해당한다. 또한 미국 해군은 지난해 8월에는 베트남전 종전 이후 38년 만에 캄란만에 함정을 보내며 베트남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미군 전력이 증강되면 중국을 포위하는 형태의 미군 재배치는 보다 완성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필리핀·대만·베트남·브루나이 등 남중국해 관련국들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스프래틀리군도(중국 이름 난사군도)를 두고 중국과 영유권을 다투면서 미국에는 도움을 요청해 왔다. 조너선 그리너트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10일 한 행사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을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곳”으로 부르면서, 필리핀은 “(미국 해군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지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군의 필리핀 증강 배치는 20여년 전의 미군 철수를 되돌리는 또다른 전환점으로 볼 수도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필리핀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미국은 수비크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왔다. 그러나 ‘피플 파워 혁명’ 뒤 필리핀 상원이 기지 임대 협정 연장을 거부하자 1992년 수비크만에서 짐을 싸야 했다. 때마침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클라크 기지도 못쓰게 돼버렸다. 현재 필리핀에는 남부 이슬람 반군 토벌을 지원하기 위해 2002년에 파병된 ‘필리핀 합동특수작전부대’ 소속의 미군 600명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 쪽에서는 예전 같은 형태의 대규모 주둔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 헌법이 새 조약을 맺기 전에는 외국군의 기지 설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환 배치라는 이름과 형식으로 난점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지금은 자유무역지대로 변모했고 관광지로도 유명해진 수비크만의 일부를 다시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필리핀은 다른 안보 분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 외무부는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워싱턴을 방문한 앨버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에게 남중국해에 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25일 보도했다. 그 이틀 전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필리핀 군 현대화를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양국 해군은 올해 처음으로 남중국해의 에너지 생산시설 보호를 목표로 한 연합훈련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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