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또 ‘마이크 설화’

핵안보회의서 메드베데프와 밀담 새나가
“대선 끝나면 MD문제 융통성” 속내 털어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은밀히 나눈 대화 내용이 공개돼 미국에서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됐다.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두 정상은 26일 양자회담을 했다. 90분간의 회담 뒤 방송 기자들이 촬영을 위해 회담장에 들어왔는데, 둘은 마이크가 계속 켜져있는 줄도 모르고 양국 관계의 뜨거운 감자인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쪽으로 바짝 다가간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선거(11월 대선)가 내겐 마지막”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모든 문제들 중 미사일방어체제는 해결이 가능하지만, 그가 내게 여유를 줘야 한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당선자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해한다. 이 정보를 블라디미르에게 전달하겠다”고 영어로 답했다.

대화 장면은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 카메라에 그대로 잡혀 공개됐다. 당시 기자들이 대화를 듣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오바마 대통령은 “잠깐, 잠깐”이라고 말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호재를 만난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공격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를 의식해 유럽 미사일방어망 구축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척만 하고 나중에 러시아와 타협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아주 문제가 많은 발언”이라며 ‘융통성’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7일 ‘공화당이 비협조적이라 그러는 것 아니냐’며 역공을 펼쳤다. 그는 기자들에게 “현재의 (미국 정치) 환경은 진지한 논의에 도움이 안된다”며 “여러분이 지난 24시간 동안 쓴 기사가 좋은 증거”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장 설화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거짓말쟁이로 부르자 “당신은 넌더리가 난다지만, 난 그런 사람을 매일 상대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것도 마이크가 꺼켜진 줄 모른 채 나눈 밀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임인 조지 부시도 ‘마이크 설화’라면 뒤지지 않는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장에서 마이크가 켜져있는 가운데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에게 “어이, 블레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빌어먹을”이라는 비속어를 썼다가 망신을 당했다.

이본영 기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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