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교황, 피델을 만나다

등록 2012-03-29 21:13수정 2012-03-30 10:39

노신념가들, 생각 달라도 만남은 화기애애
베네딕토 16세, 30만 모인 혁명광장 미사서
자유·개방확대 요구…미국금수조처도 비난
서로 화해하기 힘든 신념을 추구하며 80대 중반에 이른 두 사람이 만났다. 한 사람은 제3세계 공산주의운동의 상징, 다른 사람은 어떤 집단보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수장이다. 그렇지만 짧은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3일간의 쿠바 방문 마지막날인 28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났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에 이어 14년 만에 쿠바를 방문한 베네딕토 16세는 아바나의 바티칸대사관으로 찾아온 카스트로와 30분간 “아주 활달한” 분위기 속에 얘기를 나눴다고 로마교황청 대변인이 전했다.

카스트로는 “교황은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청 부서들의 역할과 자신의 국외 순방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카스트로는 농담 투로 교황의 나이를 물으면서 “나는 늙었지만 아직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도 했다. 카스트로는 만 85살인데, 베네딕토 16세도 다음달 16일 생일이 돌아오면 같은 나이가 된다.

두 사람이 만날 것인지는 베네딕토 16세가 얼마나 강한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와 함께 주요 관심 포인트였다. 교황이 처음으로 쿠바를 찾은 1998년에는 카스트로가 권력을 쥐고 있었고, 요한 바오로 2세와 카스트로는 그로부터 2년 전에 바티칸에서 만나 안면을 튼 사이였다. 이제 정치 일선에서 퇴진한 카스트로는 운동복을 입고 부축을 받으며 나타났다. 14년 전에는 정장을 입고 당당한 풍채를 과시하며 공항에서 교황을 영접한 그였다.

카스트로와 두 교황의 인연에는 쿠바 혁명정부와 로마가톨릭의 미묘한 관계가 스며 있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도 다닌 적이 있는 카스트로는 사제들을 박해했다는 이유로 1962년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한다. 그러나 쿠바 또한 가톨릭 전통이 강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다. 카스트로는 요한 바오로 2세와 우호적 관계를 맺으면서 기독교도의 공산당 가입을 허용하고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인정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여줬다. 2005년에는 아바나 성당에서 열린 요한 바오로 2세 추모미사에도 참석했다. 현재 쿠바 인구의 반가량이 가톨릭교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복잡한 관계 때문인지 베네딕토 16세는 쿠바 정부와 미국을 함께 비판하는 절충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이날 3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며 쿠바의 종교적 자유 및 개방 확대를 요구했다. 그는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켜본 이 미사에서 “외부에서 부과한 경제 제한 조처”가 쿠바에 부당한 짐을 지우고 있다며 미국의 금수 조처도 비난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고국인 폴란드 방문을 통해 동유럽 사회주의체제에 파열구를 낸 것과 같은 효과를 바라던 쪽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행보가 기대에 못 미친다. <데페아>(dpa) 통신은 “교황은 쿠바 인권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기대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