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등 세율 낮은곳에 자회사 세워 절세
지난해 세전이익 342억달러 중 세금 33억달러뿐
지난해 세전이익 342억달러 중 세금 33억달러뿐
애플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320㎞ 떨어진 네바다주 리노에는 이 회사의 자회사 브레이번이 있다. 사과 품종의 이름을 단 이 자회사는 아이폰 등을 만들지도 디자인하지도 않는다. 작은 사무실에 직원도 몇 안 되지만 브레이번은 2006년 설립 이후 애플의 돈을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25억달러를 벌었다. 수지맞는 자회사를 도박으로 유명한 네바다주 도시에 둔 이유는 단 하나, 세금을 내기 싫어서다. 네바다주 법인세율은 0%, 캘리포니아주는 8.84%다.
현금 1100억달러(약 125조원)를 은행에 쌓아놓은 애플이 제품 혁신뿐 아니라 세금 회피에서도 단연 최고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이 파헤친 애플의 절세 기법은 미국 주정부들이 정보기술 업체들의 약삭빠른 절세 행각에 얼마나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브레이번 사례는 애플이 1980년대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고안한 절세 방식들에 견주면 단순한 축에 속한다. 애플의 음악 콘텐츠 서비스인 아이튠스 영업을 담당하는 룩셈부르크 자회사는 정보기술 업체들의 절세 행태의 전형이다. 직원이 수십명에 불과한 이 자회사는 소비자들이 노래나 텔레비전 쇼, 앱을 내려받는 대가를 챙겨 연 매출이 10억달러가 넘는다. 룩셈부르크 시민들이 사는 콘텐츠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팔고도 룩셈부르크 정부가 정한 낮은 세율만 적용받는다. 아이튠스의 유럽 지역 영업 전략을 짠 로버트 하타는 “콘텐츠 내려받기는 컴퓨터가 프랑스에 있든 영국에 있든 상관이 없어, 트랙터나 철제품처럼 만질 수 있는 상품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정보기술 업체의 주요 수익원인 로열티도 절세에 딱 맞는 수단이다. 애플은 1980년대에 아일랜드에 차린 자회사 두곳을 통해 로열티를 받고 있다. 로열티 세율은 아일랜드가 12.5%, 미국이 35%다. 2004년 기준으로 애플 매출 중 3분의 1 이상이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이유다.
<뉴욕 타임스>는 애플이 절세 방법을 적극 개발해 다른 수백개 업체들이 뒤따르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에 독일 판매회사의 성격을 ‘중개업체’로 규정해, 독일 판매원들이 세율이 낮은 싱가포르 판매원들의 영업을 보조하는 식으로 만든 것도 애플이었다. 애플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차린 종이회사도 절세에 이용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애플은 지난해 세전이익 342억달러 중 33억달러만 세금으로 냈다. 미국 재무부 관료 출신의 경제학자 마틴 설리번은 애플이 국외사업으로 꾸민 영역을 미국 내 매출로 돌린다면 지난해 세금 24억달러를 더 내야 했다고 분석했다. 애플의 ‘절세 혁신’을 뒤따른 구글, 야후, 델 등 뉴욕 증시의 에스앤피(S&P)500지수에 포함된 정보기술 업체들의 이익 중 세금비중은 같은 지수에 포함된 비정보기술 업체들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애플이 이익 중 9.8%를 세금으로 낸 데 견줘 유통업체 월마트는 지난해 세전이익 244억달러 중 59억달러(24.1%)를 세금으로 냈다.
산업화시대에 만든 조세 제도를 농락하는 애플 등의 절세 기법은 국가나 주정부의 제살 깎아먹기 식 경쟁까지 유도해 재정위기를 부채질하는 면도 있다. 에드워드 클라인버드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애플 등 다국적기업들의 절세 전략은 그들이 독일, 프랑스, 영국에 내는 세금까지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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