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취임식 연기
야권은 재선거 요구
대통령 취임식 연기
야권은 재선거 요구
암 투병 중인 ‘남미의 풍운아’ 우고 차베스(58)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유고가 확실시되고 있다. 1999년 대통령에 오른 뒤 네번째 임기를 열려던 그는 10일(현지시각) 대통령 취임식에 서지 못하게 됐다. 미국의 뒷마당인 남미에서 좌파·사회주의 성향 정권 블록의 산파 구실을 했던 차베스의 부재는 남미의 정치 지형을 다시 출렁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가 수술을 위해 쿠바로 떠나기 전 후계자로 발표한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의 아내이기도 한 실리아 플로레스 법무장관은 7일 “(차베스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아니라 다시 당선된 대통령”이라며 취임식은 나중에 해도 된다고 밝혔다. 차베스의 최측근인 디오스다도 카베요 국회의장은 10일 취임식 대신 지지자들의 대규모 지지집회를 촉구했다. 사실상 차베스의 유고를 현실화하며, 후계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지지자들의 단결을 요구한 것이다.
1년6개월 전부터 암 투병을 하며 몇차례 수술을 받아온 차베스는 지난해 12월 추가 암 수술을 위해 쿠바로 떠난 이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가 최근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이에 야권이 재선거를 주장하는 등 베네수엘라는 권력공백의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차베스 진영 쪽이 후계 체제로 어떻게 이행하려 할지는 불확실하나, 새로운 대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는 지난달 “다시 선거가 실시될 경우 마두로 부통령에게 투표해주길 바란다”고 밝혔지만, 지명도가 떨어지는데다 여당인 통합사회당 내에서도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그에게 차베스 같은 지도력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무엇보다 차베스의 부재는 베네수엘라를 넘어 그를 구심으로 했던 중남미의 반미 좌파 정권 블록에 큰 시련이 될 전망이다. 그의 집권 14년 동안 중남미에서는 반미 좌파 정권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반미 좌파 성향의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동맹’이 결성됐다. 그가 베네수엘라에서 이끈 각종 국유화 실험은 이웃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실험은 중남미 나라들에 공통적이던 과두지배계급 정권의 퇴조와 특권 감소를 가속화했다. 하지만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빈곤층엔 ‘신앙’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극빈층 중심의 정책을 폈지만 오히려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계층 갈등이 극심해졌다는 평가가 따른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퇴조시키는 데 중심 구실을 했던 볼리바르동맹 등 반미 좌파 대중주의 정권 운동은, 사실 차베스가 뿌리는 베네수엘라의 오일달러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그는 쿠바나 볼리비아 등에 값싼 석유와 오일달러를 원조로 제공하며 미국과 맞설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이 중남미의 원자재들을 수입해 값을 올려주며 미국의 지배력에 균열을 낸 것도 시기상 맞아떨어졌다. 중국의 경제성장도 한풀 꺾이는 상황에서 차베스의 부재는 중남미의 반미 좌파 대중주의 정권 운동에 큰 고비가 될 것이 확실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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