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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반미 상징’ 퇴장…‘21세기 사회주의’ 꿈도 막내려

등록 2013-03-06 19:51수정 2013-03-06 22:37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망
오바마 “건설적 관계발전 되길”
미, 중남미와 관계개선 나설듯
“어제 여기 악마가 왔다. 바로 여기! 바로 여기! 아직도 유황 냄새가 나는 것 같다.”

2006년 9월20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총회 단상 앞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전날 같은 자리에 섰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대놓고 ‘악마’(diablo)라고 불렀다. 노엄 촘스키의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미국의 세계 지배 추구>를 흔들며 그는 “20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면 이 책을 보라”고 열변을 토했다. 전날 부시의 연설에 시큰둥했던 총회장에서는 이날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전세계 반미블록의 상징, 차베스가 암 투병 끝에 5일(현지시각) 숨졌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8일 장례식을 치른다.

그의 퇴장은 지난해 4선 성공 뒤 12월 네번째 수술을 위해 쿠바로 떠날 때부터 이미 예고됐지만,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 및 신자유주의 질서에 직접 맞섰던 이들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쿠바에선 차베스의 영웅이자 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2008년 권력 전면에서 물러난 뒤 경제위기 속 실용주의적 개혁이 진행되고 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독재자로서 2011년 가을 반군의 총에 최후를 맞이했다. ‘독자적 국가사회주의’(쿠바), ‘21세기 사회주의’(베네수엘라), ‘인민직접민주주의’(리비아)라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이들의 실험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실패 이후 한때 열광적 관심을 받았지만, 이제 그 영향력은 2006년 유엔총회의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분명 차베스가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추진한 일련의 정책은 5일 미국의 보수적인 주간지 <타임>조차 “베네수엘라는 물론 중남미에 확실한 해독제였으며 모닝콜”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989년 ‘카라카소’라 불리는 대중봉기가 수천명 학살로 끝난 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던 베네수엘라에서 그의 석유산업 국유화나 빈민층 구제사업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집권 초기 50%선을 넘나들던 실업률은 2011년 32%까지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 중남미에서 집권한 좌파 정권들은 그를 따라 국유화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해 오랜 세월 이 대륙을 지배했던 과두지배계급 퇴조와 특권 감소를 가져왔다.

그러나 차베스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2005년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었던 그에겐 극단적 정책과 통치로 ‘20세기 독재자’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졌다. 절대적 빈곤을 구제한 대신, 사회내 빈부격차와 계급 적대감은 극대화됐다.

사람들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나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같은 이들을 오히려 ‘21세기 사회주의자’로 부르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로부터 풍부한 석유 공급을 받던 쿠바나 중국이 당장 타격을 받을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일방주의가 통하던 시대는 더욱 아니다. 절대적 적국도 우방도 없는 ‘프레너미’(frenemy)의 시대에 미국 또한 차베스 사망을 계기로 중남미와의 관계 개선 모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11월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미국 쪽에 대사급 관계 복원을 제안했다며 미국의 반응에 주목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차베스의 사망 몇시간 뒤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지지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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