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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증오정치 싫다” “위대한 영웅” 논란속 차베스 옛 병영에 안치

등록 2013-03-08 19:51수정 2013-03-08 22:22

차베스 지지자인 부부가 창문 너머 남미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묻혀있는 하얀색 성당 모양의 판테온 나시오날을 가리키며 그곳에 차베스가 묻혀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차베스 지지자인 부부가 창문 너머 남미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묻혀있는 하얀색 성당 모양의 판테온 나시오날을 가리키며 그곳에 차베스가 묻혀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②베네수엘라 카라카스를 가다
92년 옛병영이었던 박물관 안에
주검 유리관 넣어 영구보존키로
“볼리바르 옆에 묻혀야” 여론도

사망 이튿날 시민들 엇갈린 평가
“서민 위한 정책” “맛없는 밀가루”
가족끼리도 얼굴 붉히며 말싸움

영면할 장지는 장례식 반나절을 남겨놓고도 알 수 없었다. 자기 차례를 알 수 없는 끝없는 이날의 조문 행렬처럼. “당연히 판테온 나시오날로 가야죠.” “거기는 말도 안 돼.” 전날 군사학교로 임시 운구한 뒤, 7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인들의 관심은 온통 주검이 어디에 묻히느냐였다. 그것은 우고 차베스 프리아스, 관 속의 그가 베네수엘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것이기도 했다.

하얀색 벽에 갈색 테두리, 중남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담한 성당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볼리바르가 독립영웅들과 묻힌 판테온 나시오날이다. 차베스가 볼리바르의 유해를 따로 옮기려 지었다는, 안으로 휜 삼각건물이 장중하다. 그곳 가이드는 “내일 차베스가 여기 와야 한다”고 말했다. “볼리바르처럼 위대한 영웅이기에.”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찰 10여명이 오가고 강력 분사기 물청소 소리가 시끄러운 판테온의 왼쪽. 1992년 차베스가 쿠데타에 실패한 뒤 2년간 수감됐던 쿠아르텔 산 카를로스가 보인다. 지금은 정부가 새 아파트(비비엔다 소시알)를 짓는 동안 임시로 사는 서민들이 여기에 드나든다.

거기서 50m를 걷자, 암을 앓던 차베스의 대통령 취임식 연기가 문제없다고 지난 1월 결정 내린 최고사법재판소 간판이 큼지막하다. 그 반대편과 판테온 사이, 빨래와 삼색 국기가 내걸린 서민아파트는 차베스가 “한푼도 안 받고” 엘리베이터를 놓고 벽을 색칠하고 난간을 고쳐준 곳이다. 정부에서 받은 노트북을 든 아이들이 계단에서 노는 그 아파트 4층 끝 집으로 안내받았다. 높은 데서 차베스가 묻혀야 할 판테온을 ‘잘 찍으라’는 당부와 함께. 차베스에 대한 생각을 묻는 키 큰 한국인을 앞에 두고 차비스트(차베스주의자)인 집주인 부부와 친척인 남성, 반대파인 친척의 아내와 장모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집이 두 채이면서 하나를 안 판다고 깡패들이 드러누워도 쫓기는커녕 부추겨. 반값도 못 받고 팔았어.” 화난 장모는 조잡한 밀가루 봉지를 흔들었다. “이게 차베스 밀가루야. 싸면 뭐해. 맛이 없는데.” 한번도 차베스를 찍은 적이 없다는 아내도 손가락을 저었다. “몇년 전부터는 슈퍼에서 우유 사는 것조차 1인당 2개로 제한해요.” “외국 나가려고 환전을 신청하면 6개월이 걸리고 그러니 뇌물 주고…. 신용카드가 없다고 400달러밖에 환전 안 해주고 암시장은 비싸서 바꾸지도 못하고.” 아내는 “반대하면 증오해버리는 정치방식이 싫다”고 말했다. 조카도 비난할 게 많았다.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친구들은 다 가는 정부기관에 취업도 안 시켜줘요.” “사업만 벌여놓고 관리는 엉망이고 문 닫은 게 몇 개인지….”

집주인 부부와 남편의 찬사는 전날 추모객들의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5월1일부터는 1주일에 이틀은 연속으로 노동자가 쉴 수 있도록 했어요. 노동자에게 이것도 의무지급하게 했어요”라며 보여준 보호장화 정도가 새로운 이야기일까. 반대파들에 대한 반박은 이러했다. ‘식료품 제한은 물가조작을, 달러 통제는 외화유출을 막기 위해서, 질 낮은 밀가루는 그래도 모두가 싼값에 먹을 수는 있도록….’ 얇은 빵 사이 치즈를 넣은 ‘아레파 콘 케소’를 저녁으로 먹는 도중에도 양쪽의 목소리는 곧 진짜 싸움으로 번질 듯 불안하게 높아져 갔다. 그러다 “반대파와도 나눠 먹는 게 차비스트다”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차베스의 주검을 ‘방부처리해 유리관에 보존한 뒤 영구히 볼 수 있도록’ 군사역사박물관에 안치한다는 발표가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1992년 쿠데타를 일으킨 옛 병영이 있던 곳이다. 7일 차베스는 그의 과거와 유산 속에서 떠돌았다. 8일 오전 11시(한국시각 9일 0시30분) 차베스의 장례가 시작됐다.

카라카스/글·사진 김순배 통신원, 칠레대 박사과정 otromundo79@gmail.com

차베스 반대자인 두 여성이 차베스 밀가루(오른쪽)와 민간 업체의 밀가루를 들어 보이며 품질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차베스 반대자인 두 여성이 차베스 밀가루(오른쪽)와 민간 업체의 밀가루를 들어 보이며 품질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차베스 반대자를 자처하는 두 사람이 차베스에 왜 반대하는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차베스 반대자를 자처하는 두 사람이 차베스에 왜 반대하는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차베스 지지자 부부가 차베스의 정책으로 노동자 보호용으로 지급케했다는 보호신발을 보여주고 있다.
차베스 지지자 부부가 차베스의 정책으로 노동자 보호용으로 지급케했다는 보호신발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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