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8 18:35
수정 : 2005.08.18 18:59
|
17일 전 국가정보부장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는 페루 리마의 칼라오 해군기지 정문 밖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 가족들이 “살인자 처벌”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 시위자가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몬테시노스의 얼굴가면을 들고 이들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리마/AP 연합
|
전 국가정보부장 몬테시노스 등 56명
후지모리 정권 때 집단살인·인권침해 혐의
“그놈들은 애들까지도 죽인 살인마들이다.”
지난 17일 페루의 수도 리마의 해군기지 정문 앞에선 100여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학살자 처벌’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해군기지 내 법정에선 전 국가정보부장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60·
아래 사진) 등 56명의 집단살인 및 인권침해 혐의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비밀 암살조직으로 알려진 ‘콜리나’의 실질적 책임자로 지목된 몬테시노스는 △1991년 리마의 빈민가에서 소음기를 단 기관총을 난사해 8살 어린이를 포함해 15명의 주민을 살해한 ‘바리오스 알토스 학살사건’과 △1992년 라칸투타대학 대학생 9명과 교수를 납치·살해한 ‘라칸투다사건’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납치된 이들은 일년 뒤 팔다리가 잘린 채 불탄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두 사건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집권 시절(1990~2000) 국가권력이 반정부 좌파 세력을 탄압한 대표적인 범죄로 알려져 있다. 2003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지난 20년 동안 국가권력의 잔학행위로 모두 6만9280명이 희생됐다는 진상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몬테시노스는 이미 2002년 부패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았고, 이듬해에는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로 5년형이 추가된 상태다. 지금까지 5번째 판결을 받았지만, 앞으로도 100여가지의 추가혐의에 이르는 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기소된 혐의는 집단살인죄 외에도 뇌물수수와 부정부패, 정치공작 인권침해, 마약·무기밀매 등 가히 권력형 범죄의 백화점이다. 집단살인 혐의는 최고 35년형이 구형될 수 있는 죄목이다.
후지모리 집권 10년 동안 권력의 2인자로 군림한 몬테시노스에 대한 재판은 페루판 과거청산과 단죄의 상징이다. 그는 2000년 9월 한 야당의원한테 1만5천달러를 건네며 정권 지지를 회유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폭로되면서 정권 몰락을 자초했다. 이후 그의 공작정치를 증언하는 비디오테이프가 잇따라 공개됐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개월만에 권좌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망명했다. 몬테시노스는 베네수엘라에서 성형수술까지 하고 숨어지내다 이듬해 페루 경찰에 붙잡혀 수감됐고, 10여년 동안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자행했던 범죄행위가 속속 드러났다.
그러나 몬테시노스는 치부한 돈으로 호화판 변호인단을 꾸리고, 개인 비리를 들먹이며 재판에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협박하는 등 ‘반격’도 만만치 않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한 희생자 가족은 <로이터통신>에 “그는 자신의 구명을 위해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그의 단죄만이 신이 우리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은 재기를 꿈꾸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행보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페루 검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56명을 기소하면서 “후지모리 전 대통령도 학살을 묵살하거나 눈감아 준 정황이 있다”고 밝혔으나 후지모리를 기소하지는 않았다. 페루 정부는 일본에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되려 후지모리는 자신의 아들을 방송에 출연시켜 무죄를 호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2010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됐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대통령’을 원하는 여론의 지지를 업고 복귀를 노리는 후리모리에게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