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급 성폭력
미국 워싱턴디시 법률은 성폭력 범죄(sexual abuse)를 1~4급으로 나누고 있으며, 그 이하 단계를 ‘경미한 성폭력’(misdemeanor sexual abuse)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미한 성폭력은 상대방의 허락이 없는 신체접촉 등을 말하고, 4급 성폭력은 상해를 입을 것 같은 합리적인 공포와 함께 성적 접촉이 이뤄졌을 때 해당한다. 실제적인 폭력행위까지 행사하면 3급 성폭력으로 올라간다.
윤창중(57) 전 청와대 대변인이 귀국 직후 청와대 조사에서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시인하고 피해자가 자신의 호텔 방에 왔을 때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행위가 미국 워싱턴디시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4급 성폭력’(Fourth Degree Sexual Abuse)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애초 피해자 신고를 받은 워싱턴 경찰당국은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신고 내용에만 기초해 ‘경미한 성폭력’(misdemeanor sexual abuse)으로 사건을 접수했으나, 수사 결과에 따라 이보다 무거운 죄목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미한 성폭력은 상대방의 허락 없이 성적인 행동·접촉을 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워싱턴 법률이 규정한 성범죄 중 1~4급 성폭력 아래의 가장 가벼운 혐의다. 6개월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반면 4급 성폭력은 생명의 위협이나 상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공포심을 느낄 만한 상황에서 벌어진 성적인 행동·접촉으로,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만달러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김행선 미국 변호사는 “업무상 상하관계에 있는 특수관계에서 호텔방으로 오라고 하면서 폭언을 했다면 협박이나 위협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방에 갔는데 상사가 알몸으로 있다면 여성으로서는 성폭행을 당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하면 4급 성폭력 내지 그 이상의 성폭력 범죄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는 윤 전 대변인의 행위를 4급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최명석 미국 변호사는 “엉덩이를 만질 땐 협박이 없었고, (이후 호텔 방으로 오라는) 협박을 했더라도 이때는 엉덩이를 만지지 않았다. 워싱턴 관련법을 보면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동시에 성적 접촉이 있어야 4급 성폭력이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어떤 죄목에 해당하는지 확정하려면, 강압의 정도 등 당시 상황이 추가 수사를 통해 확인돼야 한다. 현재 윤 전 대변인이 받고 있는 혐의는 미국 경찰에 접수된 초기 보고서에 나온 것이어서, 수사가 진행되면서 혐의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윤 전 대변인의 행위가 4급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관심을 끄는 것은 범죄인 인도 청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려면 한·미 양국에서 모두 ‘1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에 해당하는 범죄여야 한다. 4급 성폭력은 이 조건을 충족한다.
한편 워싱턴의 성폭력 관련 규정에서 ‘허리’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된다. 윤 전 대변인이 청와대 조사 때와는 달리 기자회견에서 “(피해 여성의) 허리를 툭 쳤다”고 말을 바꾼 것은 나름대로 법리 검토를 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김원철 기자
‘윤창중 성추행’과 박근혜 독선 인사 [한겨레캐스트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