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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1 18:00 수정 : 2005.08.22 19:15

③ 미국-사회보장, 민영화로

지난 14일 뉴욕주 하이드파크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박물관 앞 광장.

70여년 전 이날,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명으로 미국에 사회보장제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 개혁안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채워졌다. 뉴저지주의 은퇴 공무원 샬럿 존스(65)는 “(사회보장연금은) 그냥 내버려 두면 돼. 개혁안은 부시의 인기를 더 떨어뜨릴 뿐이야”라며 손을 내저었다.

곧 닥칠 적자 맞서 사회보장 일부 민영화 택해
개인퇴직저축제 도입해 개인에 위험부담 전가
민주당 뿐 아니라 재계·공화당 의원들도 반대

미국 정계나 학계에서 사회보장기금의 수입·지출간 불균형 문제에 토를 다는 이는 없다. 사회보장국 이사회 분석을 보면, 사회보장연금제를 앞으로 75년 동안 현행대로 유지하려면 지금 당장 2% 포인트 가량 세율을 높이거나, 아니면 연금 급여율을 13% 가량 줄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보장세 징수대상인 임금소득 상한을 올리는 등의 세수 확대안은, ‘감세 정부’로까지 불리는 부시 행정부한테는 그리 매력적인 정책 수단이 아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윌리엄 더들리 박사는 “임금소득 상한을 올리면 세수는 늘겠지만 그들에게 지급할 연금액도 동시에 늘어 불균형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출 쪽에서는 평균 수명 증가에 연동해 퇴직 연금을 받는 나이를 늦추거나, 연금급여 증가율을 임금상승률 대신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는 방안들이 논의 중이다. 1965년 이후 미국의 명목임금은 연평균 7.0%, 소비자물가는 4.6% 각각 상승했기 때문에, 물가를 기준으로 하면 실질적인 연금혜택을 줄이지 않으면서 연금 지출을 연간 2.4%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런 방안들은 모두 공공연금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수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연초 ‘소유권 사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강력하게 추진 중인 연금 개혁안은, 지난 70년 동안 유지해 온 공공연금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올들어 주요 언론의 보도 비중에서 연금 문제는 이라크 전쟁이나 북핵 문제를 제치고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부시 개혁안의 핵심은, 현재 사회보장기금에 전액 납입하는 사회보장세(세율 12.6%)의 3분의 1(4%) 가량을 개인의 희망에 따라 개인계좌에 적립(개인퇴직저축제)해 이를 증권·채권에 투자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개인계좌의 수익률이 높아지면 정부와 기금과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고 은퇴 후 연금액도 늘어난다는 명분이다. 사회보장세 부담을 키우거나 연금 급여액을 줄이지 않고 재정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사회보장제의 일부 민영화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노동계, 진보적 단체들은 물론 재계와 공화당 일부도 부시의 개혁안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70년 동안 미국인들의 신뢰를 받아온 공적연금 혜택을 도박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2042년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부시와 공화당이 재정 문제를 실제보다 과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화당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면 내년 선거에서 표심을 잃을 게 뻔하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사의 조엘 프랙큰 회장은 “부시의 개혁안을 현재가치로 따져보면, 사회보장세 세수가 줄어드는 것과 향후 연금 지급액이 줄어드는 규모가 거의 상쇄되기 때문에, 재정 불균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경제학)는 “주식시장은 수익률 변동이 심해 개인이 안아야 할 투자 부담이 너무 크다. 개인저축제는 정부가 개인한테 위험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지금의 사회보장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개혁안은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빌려 주식을 사서 차익이 생기기를 희망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은 금융 전문가들이 절대로 하지 말라고 권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들조차 노인표를 의식해 반대하고 나서자 애초 안을 수정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지역 순회 연설에서 “(개혁안에)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무는 여러 현안에 대처하는 것이고, 이를 장래의 대통령이나 국회에 전가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며 개혁안 추진 의사를 거듭 밝혔다.

뉴욕/강인봉 통신원 inbkang@hanmail.net


10년 뒤면 적자…2042년엔 곳간 텅텅 빌듯

연금재정 현황

사회보장연금 수입·지출 전망
미 사회보장기금의 수입-지출간 불균형(그래프 참조)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수입이 지출보다 많지만, 불과 10여년이 지나면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적자로 돌아선다. 그리고 2042년이 되면 지금까지 쌓아둔 잉여금으로 모두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1950년 68.2살에서 2002년에는 77.3살로 50년만에 10살 가까이 늘어났다. 연금 급여 대상과 기간도 자연스레 크게 늘었다. 사회보장연금 급여를 받는 사람은 1970년 미 전체 인구의 12.6%에서 2003년에는 16.2%로 많아졌다.

사회보장연금 수령자 대비 사회보장세 납부자의 수
문제는 1946년~1961년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 부머’들이 은퇴할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이 급여 대상이 되는 시점부터는 사회보장기금의 불균형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2003년에 3500만명인 퇴직자 수는 2030년에는 곱절인 7천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연금 수령자 대비 사회보장세 납부자 수는 1950년 16.5명에서 2003년엔 3.3명으로 줄었고, 2030년에는 2.2명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2명의 노동자가 낸 세금으로 1명의 은퇴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셈이다.

뉴욕/강인봉 통신원

“궁극적 해결책은 세금인상·혜택축소”

앨런 아워바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궁극적 해결책은 세금인상 · 혜택축소” 앨런 아워바크 교수
앨런 아워바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경제학)는 미국의 연금 개혁에 대해 “실현 가능한 종합안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 합의 가능한 안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캘리포니아대의 조세정책 및 재정학센터 소장인 그는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과 의회 합동조세위원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달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현행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두면 40년뒤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하는데.

=사회보장국의 예측은 낙관적인 편이다. 많은 인구통계 전문가들은 미국인의 평균 수명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며, 따라서 퇴직연금 지출도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중점 정책인 개인퇴직저축안이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데.

=사회보장제도 일반 국민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제도다. 그만큼 바꾸기 힘들고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은 현재의 사회보장제가 보장하는 안정된 노후 소득 자체에 매력을 갖고 있다.

-부시의 개혁안이 올해 또는 최소한 그의 임기 안에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는가?

=현실적으로 전면 도입은 어렵겠지만, 부분적으로 도입은 가능하다고 본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새 퇴직저축제도를 통해 부분적으로 노후마련 저축의 길을 열어주고, 동시에 현행 사회보장제도의 급여도 일정 부분 그대로 보장해 주는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다른 대안들이 있는가?

=궁극적으로 (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세 인상과 연금혜택 감소 두가지가 다 필요하다. 개인소득세, 사회보장세, 기업이윤세 등 세금을 올리는 방법이 있고, 급여를 줄이는 방법도 여럿 있다.

뉴욕/강인봉 통신원

70년전 첫발…연방예산 중 가장 큰 비중

사회보장연금제 개요

미 연방예산 지출내역
미국의 현행 사회보장연금제도는 대공황 때인 1935년 사회보장법이 제정되면서 첫 걸음을 뗐다. 같은 해 퇴직연금제가 도입됐고, 4년 뒤에는 유가족연금제가 추가됐다. 1954년에 신체장애연금제가 추가돼 연금 시스템의 뼈대를 갖췄다.

이어 1965년에 퇴직자와 신체장애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보장제(메디케어)가 도입되면서 오늘날의 사회보장제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미 연방정부가 연금 및 의료보장으로 지출하는 연간 예산(2003년 기준)은 7309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연방 예산 항목 가운데 가장 큰 비중(33.4%)이자, 국내총생산의 6.6%에 이르는 규모다.

사회보장기금은 피고용자의 임금 소득에서 12.4%를 떼내는 사회보장세(일명 고용명부세)가 수입원이다. 세금의 절반씩을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나눠 납부한다. 현재 연간 9만달러인 임금소득 상한선은 매년 평균 임금소득 증가율에 맞춰 조정된다. 사회보장기금 적립금은 1조4천억달러(2003년 기준) 수준이다.

뉴욕/강인봉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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