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먼드시, 주민 집 압류위기
강제 수용권 응용해 구제 나서
월가는 소송·로비로 맞대응
공익 위한 수용권 논란 번져
강제 수용권 응용해 구제 나서
월가는 소송·로비로 맞대응
공익 위한 수용권 논란 번져
미국의 한 중소도시가 재산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 주택압류 위기에 처한 주민들의 구제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월가의 은행들의 ‘훼방’이란 장애물에 부딪쳤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몬드시는 29일 부동산 거품 붕괴 때문에 대출금 이하로 집값이 떨어진 주택 중 626채의 소유자와 대출 은행들 앞으로 대출채권매입 의향서를 발송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집값 폭락으로 더이상 대출금을 갚지 못해 대출 은행들에 의해 집이 압류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조처다. 신문은 “연방정부의 구제 방안을 기다리다 지친 지역주민들을 위해 시 당국이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리치몬드시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고속도로나 쇼핑몰 건설 등 공익을 위해 개인 재산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응용해 구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가령, 40만달러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집이 부동산 거품 붕괴로 20만달러로 가격이 폭락해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집값의 80%인 16만달러에 은행의 대출채권을 사들여 주택압류를 막는 방식이다. 만약 은행이 이를 거부하면 수용권을 행사해 강제로 대출채권을 사들인다. 주택소유자는 정부보증 금융회사를 통해 일반 은행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19만달러의 대출을 받아 시 당국으로부터 주택 소유권을 되찾고, 3만달러를 주택압류구제기금으로 낸다.
미국에서 처음 시행되는 ‘새로운 실험’에 리치몬드시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지방정부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캘리포니아주의 다른 중소도시들은 물론 시애틀과 뉴왁 등 대도시에서도 수용권을 이용한 주택압류구제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리치몬드시의 실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지방정부들뿐만이 아니다. 압류된 주택을 비싸게 처분해 폭리를 취해 온 월가의 은행과 부동산 회사, 증권사 등은 리치몬드시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는가 하면, 로비스트를 동원해 연방정부와 워싱턴 정가를 움직이고 있다. 이미 공화당 소속 존 캠벨 의원은 지방정부가 수용권을 행사해 주택압류를 구제하는 프로그램에 정부보증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주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월가는 리치몬드시의 실험이 “전례도 없고, 위헌적인” 방식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로버트 호켓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땅이나 건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재산에 대해 수용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붕괴시킨 원인 제공자이면서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주택소유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월가에 대한 곱지 않은 여론도 리치몬드시 편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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