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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UN도 영국도 외면…추락하는 미국의 ‘일방주의’

등록 2013-09-01 20:30수정 2013-09-01 22:33

시리아 개입 이례적 의회승인 요청
모양새와 책임 나누기 이중 포석
이라크전 이후 영향력 쇠퇴 뚜렷
미 외교 당분간 수렁 못벗어날 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30일 저녁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과 함께 45분 동안 백악관을 산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불쑥 시리아 군사개입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받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백악관 안보팀은 그동안 의회를 협의 대상으로만 여겼을 뿐 승인을 받겠다는 방안은 고려한 적이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전적으로 혼자서 내린 결단이었다. 이날 저녁 7시 오바마 대통령은 고위 참모들을 집무실로 불러 이 결정을 통보했다. 참모들은 경악했다. 다음날인 31일 오바마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존 베이너 하원의장에게 이를 전화로 통보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1일 전한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군사개입 방안에 대해 의회 승인을 구하기까지 백악관 안팎의 혼란스러운 풍경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부, 더 나아가 미국 전체가 국제 외교무대에서 처한 곤혹스러운 처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일방주의를 휘둘러온 시대가 저물면서, 미국 외교가 표류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예상에 없던 의회 승인을 구하고 나선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도 얻기 힘들고 가장 확고한 동맹국인 영국마저 발을 뺀 상황에서 의회의 정치적 승인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최후의 명분 쌓기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에 나서도록 요구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등 중동의 주요 동맹국들마저도 공개적 지지는 꺼리는 상황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오바마는 참모들에게 의원들도 군사개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를 기록에 남겨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회의 지지를 얻는 모양새를 갖추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향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누자는 뜻이다. 타국에 대한 군사작전에서 미국 행정부가 이렇게 소극적이고 곤궁한 지경에 빠진 것은 최근 유례가 없다. 오바마는 1973년 대통령의 전쟁 수행에 대한 의회의 견제를 규정한 관련 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정치적 도박’도 벌이게 됐다.

1991년 소련의 급작스러운 붕괴 뒤 초강대국 미국의 일극체제가 부상했고,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어떤 실질적 견제도 받지 않은 채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밀어붙여왔다. 1991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점령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34개국이 동참한 다국적군을 구성해 이라크를 공격한 1차 걸프전은 그 후 20여년 동안 흔들리지 않은 미국 일방주의를 선포한 사건이었다. 1차 걸프전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거쳤으나, 미국의 압도적 힘과 위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1999년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 감행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도의 코소보 폭격은 이런 구도를 더욱 강화했다. 이는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특히 영국을 파트너로 언제든지 군사개입을 단행할 수 있다는 개입 모델을 보여줬다. 2003년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이런 행태의 정점을 보였다.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WMD) 개발을 침공 명분으로 삼으면서, 유엔 조사단의 이라크 현지 조사에 대해선 무용론을 펼쳤고, 결국 증거를 조작해 침공을 감행했다.

미국의 일방주의는 ‘미국의 선은 세계의 선’이라는 외교철학을 바탕으로 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가로 등장하면서, ‘세계 질서를 책임지는 패권국가(미국)의 선은 그 질서를 향유하는 모든 국가들에도 선’이라는 외교철학을 확산시켰다. 특히 소련이 붕괴한 뒤 이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조류가 됐다.

이라크 침공이 재앙으로 끝난 뒤 집권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초기에는 이슬람권과의 화해, 동맹국들과의 협의 강화를 내세우며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해 반성하는 뜻을 보였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무장세력 확산 등 중동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오바마의 정책은 변질됐다. 금융위기 이후 국방예산 감축, 중국의 부상 등으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이 기존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동맹세력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시리아 군사개입 시도 과정에선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롱도 감수해온 동맹 영국이 초반부터 이탈해 동맹 구조도 흔들렸다. 미국 일방주의의 주요 축들이 무너지고 있다.

의회의 시리아 무장개입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오바마 행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시리아 퍼즐에 발이 묶이고, 장기적으로는 일방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외교의 틀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허덕이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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