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화제]
1995년 클린턴 정부 때 27일간의 연방정부 폐쇄
직원들 떠난 사이 무급인턴 르윈스키와 스캔들
1995년 클린턴 정부 때 27일간의 연방정부 폐쇄
직원들 떠난 사이 무급인턴 르윈스키와 스캔들
‘오바마 케어’ 시행을 둘러싼 미국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부분 업무정지)가 미국 정치에 유·무형의 큰 상흔을 남긴 17년 전 연방정부 폐쇄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 셧다운 사태는 예나 지금이나 큰 정부 대 작은 정부에 관한 오랜 논쟁과 맞닿아 있다. 특히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셧다운은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우연과 만나 미국 정치사에 큰 상흔을 남겼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은 클린턴 대통령의 첫번째 임기중이던 1995년 일어났는데, 그해 11월14일부터 19일까지, 12월16일부터 이듬해 1월6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27일 동안 이어졌다. 발단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40년 만에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는 성과를 낸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작은 정부’를 부르짖으면서 만들어졌다. 그는 ‘7년 내 연방정부 적자 해소’를 목표로 내걸고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상·하원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맞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깅리치 하원의장은 예산안 처리를 보류하며 셧다운을 주도했다.
이 사태는 각각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대변하는 두 정치 세력의 대표격이었던 클린턴 대통령과 깅리치 하원의장 모두에게 엄청난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했다. 셧다운 때문에 연방 공무원들이 무급 휴가를 받고 귀가 조처되면서 백악관의 업무 상당 부분이 정지됐다. 이렇게 조성된 백악관의 ‘한가함’은 매력적인 40대 클린턴 대통령과 당시 백악관의 무급 인턴이던 22살 르윈스키의 ‘은밀한 연애 사건’을 불렀다. 이 스캔들을 조사했던 케네스 스타 검사의 보고서를 보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은밀한 성적 접촉은 연방정부 셧다운 둘쨋날이었던 1995년 11월15일에 시작된다. 셧다운 때문에 정규직 공무원들이 자리를 비우자, 전화 연결 정도의 부수적 업무를 하던 무급 인턴 르윈스키가 대통령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이들은 직원들이 휴가를 떠나 인적이 한산해진 백악관의 한 사무실에서 성적 유혹을 주고받았고, 이런 은밀한 연애사가 정치적 스캔들로 불거지며 클린턴은 재임시 탄핵 소추에 휘말렸다.
클린턴만 비용을 치른 것은 아니다. 깅리치는 셧다운을 밀어붙였다가 정치적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깅리치 하원의장은 중간선거 승리를 ‘국가 (역할을) 축소하라’는 유권자들의 요구로 해석해 클린턴 대통령이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아갔다”면서 “하지만 역설적으로 셧다운을 통해 미국 대중들은 그들이 미워하던 정부와 관료들이 실은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깅리치는 이후 중간선거에서 패배해 책임을 추궁당하며 영향력을 잃었고 1999년 하원의장직과 의원직을 동시에 내놨다.
한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번 셧다운에선 이런 스캔들은 없을 것”이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보다 충동 억제력이 더 강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백악관 인턴들도 셧다운 기간 동안 업무를 하지 않도록 조처했다”고 전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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