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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4년 만에 돌아온 바첼레트…칠레 개혁 순풍탈까

등록 2013-12-16 20:07수정 2013-12-17 08:27

결선서 62%…첫 재임 여성대통령
전체 유권자 26% 불과 대표성 논란
세제개혁·대학 무상교육 정족수 확보
헌법개정 추진엔 의회 의석수 부족

눈 높아진 중산층 개혁요구 부담
단결된 우파 반발도 정국 변수로
‘뻔한 대선’은 끝났다. 볼거리는 이제부터다.

15일 치러진 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 범중도-좌파 연합 ‘누에바 마요리아’의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2006~2010)이 당선됐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다. 그러니, 이날 산티아고 주택가에선 프로축구에서 골이 터질 때마다 시끄럽게 들려오는 환호나 발구르기는 없었다. 바첼레트가 62%를 얻어 37%를 얻은 여권 우파연합 ‘알리안사’의 에블린 마테이를 꺾은 압승이었다. 투표가 끝난 지 1시간3분 뒤 마테이가 패배를 인정했다. 이로써 11월17일 1차 투표에서 47%를 얻어 당선을 확정짓지 못한 바첼레트가 칠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란 자신의 역사에 첫 재임 여성대통령이란 기록을 더했다. 20년 집권 뒤 우파에 정권을 내준 중도좌파가 4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바첼레트는 인물과 조직에서 모두 앞섰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인 우고는 “정치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딸이 바첼레트를 좋아한다. 친할머니 같다며”라고 말한다. 바첼레트는 그만큼 친근감을 주는 정치인이다. 선거 기간에 “범죄자들은 감옥에 있어야 한다”며 범죄 척결을 단호한 목소리로 외쳐온 마테이한테서 찾기 힘든 매력이다.

바첼레트는 중도-좌파 연합 ‘콘세르타시온’과 공산당까지 끌어안으며 조직을 넓혔다. 반면 우파는 막판 후보 교체에 이어 정당 간 공조까지 삐거덕거렸다. 결선투표까지 가는 게 목표였던 우파는 “(역전을) 할 수 있다”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이변은 없었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 바첼레트 지지자들은 우파를 향해 “못했다”고 조롱했다.

무엇보다 정책이 승패를 갈랐다. 바첼레트는 선거운동 내내 불평등 개선을 강조하며 공교육 및 의료서비스 개선은 물론 세제개편, 헌법개정 등 전면적 사회개혁을 약속했다. 이날 당선 뒤 바첼레트는 “근본적 변화의 길을 국민이 선택했다. 칠레가 필요로 하는 근본적 변화를 장기적으로, 화합해서, 책임감을 갖고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이후 거리시위들에서 터져 나온 칠레인들의 사회적 요구를 수용해 향후 정책으로 실현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날 우파 예비 대선후보였던 안드레스 알라만드의 분석이 언론에 자주 언급됐다. 그는 우파의 패인에 대해 “헌법개정, 조세 인상 등 사회 내부의 이데올로기 논쟁에 무관심했다. 경제지표만 채우면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데 충분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지금의 세상과 맞춰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 바첼레트가 마주한 도전은 한껏 부푼 유권자들의 기대다. 이날 언론에는 “이제는 공약을 실천해야 한다”는 표현이 수없이 등장했다. 최근 브라질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보듯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중산층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바첼레트는 선거 기간에 여기에 불을 붙였다. 이날 당선 뒤 그가 “(공약 실천은) 대통령 임기를 넘어가는 과제이며, 마술과 같은 비법은 없다. 쉬운 길을 택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지나친 기대에 대한 경계가 드러난다.

바첼레트는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지난달 의회 선거에서 중도좌파 연합은 하원에서 우호적 무소속 포함 71석, 상원에선 21석에 우호적 무소속 1석을 차지했다. 법인세 5% 인상 등 세제개혁(하원 61석, 상원 20석), 대학 무상교육(하원 69석, 상원 22석) 실현 등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는 확보했다. 하지만 전면적 사회혁신을 위한 헌법개정(하원 80석, 상원 25석)은 불가능하다고 일간 <엘메르쿠리오>가 분석했다. 정족수만 문제가 아니다. 칠레 수출의 56%를 차지하는 구리의 국제가격 하락도 무상교육 등을 위한 재원 마련의 걸림돌이다. 국영 연금회사 설립 등의 정책은 선거전에서 보수가 제기한 “차베스식으로 나라를 운영하려 한다”거나 “쿠바를 만들려느냐”는 거센 공격을 받을 게 뻔하다. 마테이가 산티아고의 동북부 상류층 지역에서는 바첼레트를 이긴 데서도 보수세력의 견고함이 드러난다. 동성결혼 허용 등 공약에 대해서도 보수의 반발이 거세다.

보수가 바첼레트를 “그들만의 대통령”으로 공격할 무기는 또 있다. 첫 자율투표제가 도입된 대선에서 41.8%에 그친 투표율이다. 바첼레트는 1989년 이후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전체 유권자로 보면 약 26%의 표를 얻었을 뿐이다. 대표성 논란이 이날 주요 뉴스였다. 낮은 투표율에는 바첼레트에 대한 불신도 배어 있다. 그에 대한 가장 흔한 불만은 “많은 것을 약속했지만 (1기) 대통령 재임 때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변수는 여권의 단결이다. 중도에서 공산당까지 포함하는 넓은 스펙트럼은 선거전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공산당 소속 정치인을 내각에 앉힐 것인가?” 같은 질문도 쏟아졌다.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합후보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의 사회혁신 뒤 혼란과 쿠데타의 트라우마가 남은 칠레에서 공산당과의 공조엔 변수가 많다.

바첼레트는 이날 당선 소감에서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고문으로 숨진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이날 그 독재정권에서 승승장구한 장군의 딸 마테이는 눈물을 흘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반면 바첼레트는 함께 고문을 받은 어머니와 함께 축하무대에서 포옹했다. 정의가 이긴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 칠레에서 사회정의가 실현될까? 바첼레트가 이번에는 ‘신자유주의 실험장’이라는 칠레의 오명을 벗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바첼레트는 내년 3월11일 취임해 2차 집권을 시작한다.

산티아고/김순배 통신원 otromundo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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