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에서 쫓겨난 노인과 아이 미국 미시시피주 빌록시의 한 대피소에서 6살바기 여자아이와 한 노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의자에서 자고 있다. 이곳에 묵고 있던 사람들이 잇따라 질병에 걸리자 3일 당국은 대피소를 폐쇄했다. 빌록시/AP 연합
‘버려진 도시’ 뉴올리언스를 가다
군헬기 쉼없이 뜨고 내려 시가전 방불
슈퍼돔 수천명 시외 대피행렬 북새통
군헬기 쉼없이 뜨고 내려 시가전 방불
슈퍼돔 수천명 시외 대피행렬 북새통
도심 주변 세 곳에서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그 위로는 치누크 헬기를 비롯해 10여대의 군 헬기들이 굉음을 내며 떠돈다.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는 〈시엔엔뉴스〉의 보도가 과장이 아니다. 3일 낮(현지시각)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도심은 마지막 대피에 나선 피난민 행렬로 북새통을 이뤘다. 2만여 주민들이 수용돼 있던 슈퍼돔 바로 옆 고가도로 위에선 마지막 이재민을 실어나르는 헬기들이 쉴새없이 뜨고 내렸다.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던, 1만여명이 수용돼 있던 컨벤션센터 앞에도 이재민들을 태운 버스들이 줄지어 떠났다. 마티 롱 주방위군 하사는 “컨벤션센터에서 떠나는 사람 중에 한국인들도 10여명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차도 돈도 없다” 퇴거 거부 흑인들도
물빠진 한인상가 약탈 흔적 나뒹굴어 컨벤션센터 앞을 지키던 주방위군 데이비드(23)는 “어제 슈퍼돔에서 4천명, 오늘 컨벤션센터에서 5천명을 시외로 이동시켰다. 이제 시내에 남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전 이라크에서 1년 동안 복무하고 미국에 돌아온 뒤 곧바로 이곳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총을 든 약탈자들과 거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도심에 사람들이 줄어드니까 이젠 치안도 안정이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병사는 “도심에서 주검들만 빼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 나갔다”고 했다. 20여명의 주방위군이 앉아 쉬고 있던 거리의 뒷벽엔 ‘약탈자는 쏜다’(You loot, We shoot)는 글이 스프레이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거리엔 아직 이주를 거부하는 흑인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데그니 투비어(41)는 휴스턴행 버스를 마다며 그대로 거리에 주저앉아, 정부에서 준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컨벤션센터에 약탈자와 갱들이 많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갱들은 보지 못했다. 물론 약탈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라고 정부를 원망했다. 흑인 빈민층의 약탈행위를 보는 눈도 서로 이렇게 다르게 비치고 있었다.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번화한 커낼거리와 프렌치쿼터 지역의 바로 외곽에 있는, 동쪽 지역의 초입은 여전히 물에 잠겨 있다. 여기서 더 동쪽으로 갈수록 흑인 빈민촌이 이어지고, 홍수도 더 심해진다. 집 현관까지 물이 들어찼는데도, 상당수 흑인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도시를 완전히 비우라”는 정부 명령은 그냥 귓가를 스칠 뿐이다. 길에서 만난 존 토머스에게 ‘왜 정부의 퇴거명령에도 그냥 남아 있느냐’고 묻자 “돈도 없고 차도 없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동쪽 지역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대형 잡화점 ‘뷰티플러스’는 정문이 완전히 부서졌다. 안엔 진열장이 다 깨지고 바닥엔 상품들이 뒹굴었다. 흑인들의 약탈 때문이다. 이걸 본 어느 한인은 “여기가 그래도 이 부근에선 제일 큰 잡화점이었는데 …” 하며 안타까워했다. 홍수와 함께 약탈은 현지 한인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도심에서 좀 벗어난 한인 밀집지역, 케너와 메터리의 한국 상점들도 상당수가 약탈당했다. 케너 쇼핑몰의 잡화·휴대폰 판매점인 ‘영패션’에선 고급 휴대전화와 의류, 운동화 등이 많이 사라졌다. 물이 빠지면서, 시외로 대피했던 많은 한인들이 이날 메터리와 케너의 집으로 돌아와 뒷정리에 나섰다. 이들은 청소할 엄두도 못 내고 필수품들 몇가지만 챙켜 다시 도시를 빠져나갔다. 메터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격(57)씨는 2년 전 140만달러를 들여 건물을 짓고 대형 세탁소를 운영해 왔는데 이번에 홍수로 모든 걸 잃었다. 그나마 슈퍼돔과 컨벤션센터가 있는 도심에서만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을 뿐 외곽으로 나갈수록 사람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도로엔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곳곳에 부서진 선간판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고속도로엔 자동차들이 방치돼 있다. 도시를 빠져나가려다 휘발유가 부족하자 그대로 버려둔 것 같다.
박찬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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