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극적 탈출한 ㄱ씨
“암흑천지 슈퍼돔은 무법지대였다.”
9살 난 아들과 함께 뉴올리언스 시내에 고립됐다 슈퍼돔으로 피신한 뒤 다시 이곳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ㄱ(38·여)씨는 당시의 상황을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시내 백화점에서 일하는 그는 지난달 28일 카트리나가 닥친다는 얘기를 듣고 직장동료 4명과 함께 백화점 부근 호텔로 피신했다. 호텔이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카트리나가 상륙하면서 29일 새벽부터 전기가 나갔다. 이날 밤 폰차트레인 호수 둑이 무너지면서 30일 새벽엔 호텔 로비에 물이 가득 찼다. ㄱ씨는 “홍수가 나자 저지대에 머물고 있던 흑인들이 호텔로 몰려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빈방 등을 뒤져 물건을 제멋대로 가져가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두려움에 떨던 ㄱ씨는 라디오에서 “모든 주민들은 밖으로 피신하라. 슈퍼돔으로 집결하면 밖으로 데려가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들과 함께 호텔을 빠져나왔다. 거리는 이미 허리까지 물이 차 있었다. 동료 한명이 ㄱ씨 아들을 무동 태우고 탈출을 도와줬다. ㄱ씨 일행이 물길을 헤치고 가는 도중 뒤에서 세명의 남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쫓아왔으나, 바로 옆 메디컬센터 베란다에 있던 간호사들이 고함을 지르자 사라졌다.
간신히 인명구조 보트에 구조된 ㄱ씨 모자는 슈퍼돔에 도착했지만, 입구에선 “인원이 꽉 찼다”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길거리엔 입장을 거부당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몰려 앉아 있었다. 울고 있던 그를 유심히 보던 한 병사가 “내 아내가 필리핀 사람”이라며 ㄱ씨 모자를 슈퍼돔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슈퍼돔에 수용된 2만5천여 주민들 가운데 대부분은 흑인이었다. 이미 화장실이 작동하지 않아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전기가 나간 지 오래돼 칠흑같은 어둠속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자판기를 깨고 음료수를 꺼내 먹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지만 이미 통제권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ㄱ씨는 “입장 때 소지품 검사를 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무기를 갖고 있었다. 며칠째 암흑 속에 있던 사람들은 화가 날 대로 난 상태였다”고 말했다.
“여자들이 어린아이가 떨어져 죽고, 젊은 여성들이 많이 강간당한다는 얘기를 해줬다. 식량도 잘 지급되지 않아 배급 때는 아수라장이 된다고 했다. 너무 무서워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지샜다.”
다행히도 다음날 그 군인이 오더니 “좀 괜찮은 곳으로 가자”며 ㄱ씨 모자를 슈퍼돔 옆 농구경기장으로 데려갔다. 이곳에서 환자,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있던 ㄱ씨는 지난 2일 관광객들과 함께 가장 먼저 뉴올리언스 외부로 소개됐다. 그때는 일부 주민들이 헬기에 총을 쏴, 슈퍼돔 수용민들의 외부 소개가 일시 중단된 때였다. ㄱ씨는 군인 복장의 민간인 두명의 호위를 받으며 뒷문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ㄱ씨는 “다시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ㄱ씨는 현재 뉴욕 친지 집에 머물고 있다.
뉴올리언스/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뉴올리언스/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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