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EU 담당 ‘빅토리아 눌런드’ 차관보와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제프리 피아트’ 대화로 추정
미국 “러시아가 도청 유포에 일정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제프리 피아트’ 대화로 추정
미국 “러시아가 도청 유포에 일정 역할을 했다”
미 국무부 고위 외교관이 우크라이나 정정 불안을 논의하면서 “유럽연합(EU)은 입 닥쳐야 한다(Fuck the EU)”고 거칠게 비난하는 전화 내용이 도청된 뒤 녹음파일이 6일(현지시각) 유튜브에 유포됐다고 <비비시>(BBC) 등이 전했다. 특히 소치 겨울 올림픽을 앞두고 시리아·우크라이나 문제, 러시아 반동성애법 등 인권 문제로 미-러가 날선 대립각을 세운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 공식 트위터가 유튜브 관련 링크를 트위트하기까지 하자 미국이 반발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날 <비비시>는 유포된 4분10초짜리 녹음파일이 미 국무부의 유럽연합 담당 빅토리아 눌런드 차관보와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인 제프리 피아트의 전화 대화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파일은 러시아어로 ‘독립광장의 꼭두각시들’ ‘솔직한 비밀 대화’ 같은 제목 아래 눌런드 차관보의 사진, 우크라이나 야당 인사들의 사진 등을 편집한 화면과 함께 대화 내용 전체를 러시아어 자막으로 상세히 붙여 놓았다. 독립광장은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의 중심이 된 수도 키에프의 중심 광장으로, 반정부 시위대가 미국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라고 비꼬는 뉘앙스를 담은 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정불안과 관련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내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녹음파일은 미국 고위 외교관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갖고 있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눌런드 차관보는 “이 사태를 봉합하는 데 유엔이 나서는 게 좋은 생각”이라며 “당신도 알다시피 유럽연합은 입닥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는 현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정치·경제협정 추진을 중단하고 러시아와 밀월로 돌아서면서 불이 붙었는데, 미국은 유럽연합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눌런드 차관보는 또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지도자 세 명에 대해서도 호오를 분명히 했다. 그는 복싱 선수 출신의 비탈리 클리치코에 대해선 “새 정부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 아르세니 야체뉴크에 대해선 “그는 경제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호의를 표명했다.
미국 국무부는 “녹음파일 목소리 신원에 대해서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면서도 “눌런드 차관보가 보도된 코멘트들에 대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또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 정부가 관련 내용을 트위트 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일정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도청과 유포 과정에 대한 의심과 불쾌감을 드러냈다. 유럽연합 쪽은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현재 정치 위기와 관련해 돕고 있다”며 “우리는 도청된 전화 대화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