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트리나 대피소 르포
정부·언론 향한 검은 분노·눈물
“당신들은 모른다” “<뉴욕타임스>가 인종차별에 대해 뭘 아는가. 뉴욕 같은 동북부는 플로리다, 조지아, 테네시, 루이지애나, 텍사스, 이런 남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이해를 못한다.” 5일(현지시각) 미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서 120여㎞ 떨어진 배턴루지의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흑인 제임스 라파엘(25)은 인종 문제가 나오자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늑장대응이 흑백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는 얘기에 돌아온 답이었다. 그레이스(50·여)는 “나는 아버지가 전립선암이라 운 좋게 가장 빨리 소개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뒤에 남았고 얼마가 죽었는지 모른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연방정부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 참혹했다. 이런 상황은 지난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긴 것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고 잘라말했다. 뉴올리언스의 대홍수는 대피소의 이재민들, 거의 전부 흑인인 이재민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고 있다. 이재민들 뿐만이 아니다. 800여명이 수용된 배턴루지 남부대학 대피소는 흑인 밀집거주 지역에 있다. 대학 바로 앞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에서 만난 4명의 흑인 여성들은 “허리케인 피해가 엄청나게 커진 건 뉴올리언스에 흑인들이 주로 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은 일부 흑인들이 약탈을 벌여 뉴올리언스 시내가 무정부상태가 됐다는 언론 보도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나도 그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배가 고프면 먹을 걸 훔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건 약탈이 아니라 필사적인 생존의 몸부림이다.” 대피소에서 만난 모든 흑인들이 대참사의 책임을 온전히 연방정부에 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엔 모든 이들의 대답이 일치했다. 약탈 행위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제임스(43)는 “당신이라면 가족들이 굶는데 그냥 앉아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빈민가에서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아온 이들에겐 굶주림에 대한 어떤 공감대가 있는 듯했다.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배턴루지에 수용된 이재민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들은 악명 높은 슈퍼돔이나 컨벤션센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이곳으로 소개됐다. 연방정부에 대한 비난은 젊을수록 더 거침없이 나왔다. 이번 참사는 작게는 배턴루지, 좀더 넓게는 미 전역의 흑인사회를 공분시키며 단합하게 하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 4일엔 주변 교회들에서 이 수용소를 찾아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보았다고 이재민 로이드 해리스(53)는 전했다. 또 멀리 미시간주에서 10여명의 흑인들이 3대의 버스에 구호품을 가득 싣고 이곳을 찾아왔다. 이 위문단을 이끈 그리핀 리버스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대피소인) 시내 컨벤션센터에 흑인들이 얼마나 있는지 연방비상관리국(FEMA)에서 파악조차 못한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우리가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학에서 서너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흑인교회 라이트하우스침례교회에도 80여명의 이재민이 살고 있다. 교회 자체적으로 버스를 동원해 이재민들을 교회로 날랐다. 릴리 언더우드(55) 목사는 “나는 이번 사태가 인종갈등으로 비화하길 원치 않는다. 물건을 약탈하는 건 잘못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역시 “전국의 흑인들이 분노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사망자가 늘어난 건, 왜 빨리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건 인종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고 토로했다. 마침 이날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배턴루지를 찾았다. 뉴올리언스 대신에 가장 가까운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배턴루지는 다행히 허리케인이 비껴가 피해가 매우 적은 곳이다. 현지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최대 피해지역 중 하나인) 미시시피주 빌럭시는 직접 방문했으면서도 뉴올리언스는 공중에서만 보았다”고 전했다. 부시의 방문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이 교회의 이재민 러머드 저스터(37)는 “연방정부가 3~4일만 빨리 움직였더라도…. 앞으로 인종 갈등이 더 심해질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보느냐’는 질문에 그의 답은 간결했다. “죽은 사람이 거의 모두 흑인이다. 이것보다 더 명확한 이유가 어디 있느냐.” 뉴올리언스 대홍수는 2001년 9·11 테러와는 정반대로,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분열된 미국사회를 인종별·계급별로 더욱 찢어놓고 있다. 배턴루지(루이지애나)/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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