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 ‘세계 전략’ 진퇴양난
중국 견제 아시아 회귀 전략 차질
다시 유럽·중동에 발묶일 가능성
내부선 강경파 목소리 높아져
재정적자 감축 민주당 정책 흔들
중국 견제 아시아 회귀 전략 차질
다시 유럽·중동에 발묶일 가능성
내부선 강경파 목소리 높아져
재정적자 감축 민주당 정책 흔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더욱 격화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세계 전략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유럽에 발이 묶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추진해온 ‘아시아 회귀’ 전략은 더욱 힘에 버거워질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벗어나려 애써온 중동 분쟁의 수렁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이 추진중인 국방비 삭감 등 군사력 재편도 어려워지는 등 오바마 행정부의 세계 전략 전반을 꼬이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12년 초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전세계적 군사 전략의 골간으로 유지하던 ‘두 개의 전쟁 전략’을 폐기했다. 두개의 전쟁 전략, 혹은 2.0 전략이라고 부르는 이 원칙은 미국이 두개의 전면전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을 갖춰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행정부 이후, 세부적 변화는 있었지만 두개의 전쟁 전략의 골간은 계속 유지됐다. 미국은 유럽이나 중동, 아시아에서 두개의 전쟁을 동시에 감당할 전쟁 능력을 갖추려 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재정적자로 인한 국방비 삭감과 안보환경 변화 때문에 2012년 ‘연례국방경비연방예산’에서 두개의 전쟁 전략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대신 한 곳에서 대규모 재래식 전면전을 수행하는 동시에 잠재적 분쟁지역의 적을 억제하는 능력을 갖추는 ‘원-플러스’ 전략을 택했다. 냉전 이후 유럽에서의 안보위협이 감소하고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를 중시해야 하는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전략이다.
2차대전 이후 냉전 시절 내내 소련이라는 막강한 가상적국의 위협에 노출된 유럽은 미국의 첫번째 안보 우선지역이었다. 하지만 냉전과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유럽의 전면전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해 두 개의 전쟁전략을 꾸준히 축소했다.‘원-플러스’ 전략은 이런 추세의 완성판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오바마 행정부는 최악의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제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하던 미국-러시아 관계의 ‘리셋’(재조정)은 두 나라 관계의 ‘리싱크’(재고)로 대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뒤 미국 조야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강경 대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극적으로 높아졌다. 미사일방어체제(MD) 추진을 꾸준히 주장하는 의회 내 매파의 목소리와 군산복합체들의 로비도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는 국방비 삭감 재고를 요구하는 주장으로 연결되게 되는데, 미국이 향후 10년 동안 추진하기로 한 재정적자 삭감 정책에서 사회복지비 등이 우선 희생되고 국방비는 줄지 않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에 큰 타격을 주게되는 상황이다.
크림반도 합병의 여파는 중동지역에까지 들이닥칠 태세다. 18세기 이후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이 각축을 벌여온 핵심적 이유는 중동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푸틴의 러시아는 이미 시리아 내전을 통해 중동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냉전 뒤 최고 수준으로 키워왔다. 러시아가 이란-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반미 시아파 세력’의 이해를 방어해주는 구도였다.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의 큰 도박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보수적인 수니파 왕정국가들을 더욱 자극해 시리아 내전에 대한 타협을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 중국 역시 아시아로 회귀하려는 미국을 다른 지역에 묶어두기 위해 크림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현안에서 러시아와의 공조를 강화하는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
냉전사 연구자인 마이클 돕스는 <뉴욕타임스>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의 헤게모니를 다투는 것은 아니어서 당장 냉전이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더 규모가 크고 더 위험스런 제2의 유고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크림반도 분쟁이 민족·종교분쟁의 불씨가 가득한 우크라이나와 그 주변으로 확장될 우려가 있고, 그 경우 미국 등 서방은 유럽의 한가운데서 분쟁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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