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 근거로
“기부도 정치적 의사 표현” 제한 풀어
개인이 최대 360만달러 기부 가능
대법관 9명중 진보성향 4명 반대
“부자들에게 ‘대형 메가폰’ 준 꼴”
“기부도 정치적 의사 표현” 제한 풀어
개인이 최대 360만달러 기부 가능
대법관 9명중 진보성향 4명 반대
“부자들에게 ‘대형 메가폰’ 준 꼴”
미국 정치가 ‘1인 1표’가 아닌 ‘1달러 1표’의 시장논리로 기울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개인의 정치 기부금 총액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가 금권정치 가능성을 여는 근거로 활용돼 아이러니다. 법 논리와 가치의 충돌 등 철학적 논란뿐만 아니라, 부자와 빈자의 정치 영향력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일 개인이 공직선거 후보자나 정당 등에 건네는 선거자금 기부 총액 제한을 5 대 4로 ‘위헌’ 판단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개인이 한 후보자한테 건넬 수 있는 기부금 상한선(2600달러)은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개인의 기부 총액이 무제한으로 늘지는 않더라도 2년 기준으로 개인이 후보자들과 정당 등에 건넬 수 있는 기부금 최대치는 기존의 12만3200달러에서 36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은 조항은 1970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뒤 거액 기부자들의 ‘표 구매’ 행위를 막고자 입법한 것이었다. 이번 판결에서도 보수적 대법관 5명과 진보적 대법관 4명의 판단이 확연히 갈렸다.
보수 성향 대법관들을 대표해 다수 의견을 집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정치적 기부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한 형태로 이를 제한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수정헌법이 심대한 불쾌감을 주는 성조기 소각이나 나치 퍼레이드까지 보호하는 것처럼, 대중의 반대가 있더라도 수정헌법은 정치적 표현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부금도 정치적 표현이며, 따라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예를 들어 435명(하원의원 총수)의 후보자에게 3000달러씩 130만달러를 기부할 수 있다면 부패가 늘어날 수 있다. (보수 단체인) ‘시티즌 유나이티드’ 사건이 문을 열었다면 오늘 결정은 수문을 열어젖힌 것과 같다. 소수의 기부자들이 다수의 목소리를 익사시켰다”며 지적했다. 엘리나 케이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소니아 소토마요르 등 다른 진보 성향의 대법관도 반대 의견을 냈다.
연방대법원은 2010년 ‘시티즌 유나이티드 대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사건 때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특정 후보에게 지출하는 광고와 홍보비에 제한을 둘 수 없다고 5 대 4로 판결한 바 있다. 이번 판결도 이런 연방대법원의 보수적 판결 흐름의 연장선이다.
미국의 소비자 권익옹호 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5명의 대법관이 뭔 소리를 하더라도, 수정헌법은 부자들에게 대형 메가폰을 주라고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금권정치로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타격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반응도 크게 갈렸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기부자들은 원하는 것을 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게 대법원이 가는 방향이다. 이번 판결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뭘 의미할지 우려스럽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돈(money)의 정부가 아니라 다수(many)의 정부를 위해 목숨과 자유를 희생했다”고 꼬집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판결 뒤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레이 워시번 기금모금위원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전했다. 기부자와의 모임 도중 이번 판결을 들었다는 워시번 위원장은 “기부금 상한에 걸렸던 한 분이 즉석에서 3만2400달러를 추가로 내겠다고 약속했다. 벌써 효과가 났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