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진을 밟고 서 있다. 암만/신화 연합뉴스
‘반유대주의’는 미국 등 서방에서는 금기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을 낳은 반유대주의는 서방 기독교문명의 원죄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대인들이 막강한 세력을 발휘하는 미국에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혐오는 무조건적 친이스라엘 대외정책으로 귀결됐다.
미국에서 이런 ‘친이스라엘’ 여론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가 <엔비시>(NBC)·<월스트리트 저널>과 공동 실시해 3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18~29살 응답자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 충돌과 관련해 이스라엘에 호감을 느낀다는 사람은 27%에 그쳤다. 팔레스타인에 호감을 느낀다는 응답자의 비율 24%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는 43%가 이스라엘에, 14%가 팔레스타인에 호감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고,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은 43%여서 여전히 친이스라엘 여론이 높기는 하나, 젊은층일수록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았다. <엔비시>는 “이스라엘이 주요 동맹국인 미국에서 미래 세대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이번 가자지구 공격에서 어린이 등 민간인들이 큰 고통을 당하는 상황이 알려지면서, 미국 내 여론도 악화됐다. 지난달 8일부터 계속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인은 1849명까지 늘었고, 이중 어린이는 최소 400명, 여성은 210명이나 된다. 이스라엘은 3일에도 가자 남부 라파에서 3000여명의 피난민이 대피해있던 유엔 학교를 폭격해 10명 이상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
지난 7월24~27일 이뤄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35%는 이스라엘의 대응이 정당하다고 답했고, 이스라엘의 대응이 너무 심하다는 응답은 25%였다. 이는 2009년 1월 가자지구의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50%가 정당했다고 응답한 데 비하면 지지가 크게 준 것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미국인들이 정파별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여론이 갈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46%가 정당하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 정당하다는 응답자는 31%, 과하다는 응답자는 35%로 과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세계적으로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반유대주의로 번지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반유대주의 반대단체인 ‘반명예훼손위원회’가 101개국 5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분의 1 정도가 유대인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을 보였다. ‘유대인은 국제 금융에서 과도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의 국제 분쟁에서 책임이 있다’ 등의 주장에 응답자의 25%가 동의했고, 특히 유대인이 국제 금융, 국제 정치, 국제 언론, 미국 정부, 국제 분쟁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데 대해서는 30~44%가 동의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자위권’ 또는 ‘생존권’ 등을 앞세워 논평하던 미국 당국의 입장도 최근에는 곤혹스럽게 바뀌고 있다. 국무부는 3일 이스라엘의 유엔 학교 폭격에 “경악한다”고 밝혔다. 젠 사키 대변인은 “수치스럽다”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해 ‘생존권’이나 ‘자위권’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고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 쪽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친이스라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차기 대선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공화당의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시엔엔>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비판하려고만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에서 이스라엘과 어떤 틈도 생겨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3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진을 밟고 서 있다. 암만/신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