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이한탁(79)씨
화재로 친딸 잃고 종신형 받아
검찰 ‘증거심리’서 비과학적 시인
펜실베이니아주 법원 무효 판결
올해안 출소…검찰, 항소 검토
검찰 ‘증거심리’서 비과학적 시인
펜실베이니아주 법원 무효 판결
올해안 출소…검찰, 항소 검토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온 재미동포 이한탁(79·사진)씨가 유죄평결 25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연방중부지방법원 윌리엄 닐런 판사는 8일(현지시각) 이씨에게 내려졌던 방화·살해 혐의에 대한 유죄평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무효화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판사는 검찰에게 이씨를 앞으로 120일 안에 재기소하거나, 아니면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이 유죄평결을 무효화한 것은 지난 5월29일 이씨의 재판에 대한 유효성을 가리기 위해 열린 법원의 ‘증거심리’에서 검찰이 자신들의 증거가 과학적이지 못했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증거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예심 판사는 본심 판사에게 전달한 권고문에서 “25년 전 이씨의 유죄 근거가 됐던 방화 수사 증거가 비과학적이고 지금의 수사 기준으로는 인정될 수 없다”며 “그의 형벌과 유죄판결은 무효이며, 검찰의 재기소가 없으면 이씨는 풀려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씨의 변호인인 피터 골드버거는 다음주 이씨에 대한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변이 없는 한 이씨는 올해 안에 펜실베이니아 주립교도소에서 출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1989년 7월29일 새벽 펜실베이니아주 먼로 카운티 스트라우드 타운십에 있는 한 수양관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비롯됐다. 철도고와 연세대를 거쳐 교사 생활을 하다가 78년 뉴욕으로 온 이씨는 맨해튼에서 옷가게를 운영했다. 마침 큰딸 지연(20)씨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함께 수양관에 머물다 화재를 만난 이씨는 무사히 탈출했지만 딸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누전 등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방화 혐의를 제기했다. 사고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크다는 화재 전문가들의 조사보고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 “우울증을 앓던 딸과 관계가 좋지 않던 이씨가 건물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고, 그의 셔츠와 바지에 묻어 있는 발화성 물질이 그 증거”라는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씨는 이후 항소와 재심을 요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씨의 아내도 투병 생활을 하는 등 시련이 깊어졌다. 그런데 2012년 제3순회 항소법원이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골드버거 변호사를 통해 뉴욕시소방국 화재수사관 출신인 존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를 새 증거로 제출했다. “애초 이씨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검찰의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 그의 옷에 묻은 발화물질이 모두 다르다”는 렌티니 박사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반박을 못했고, 오히려 렌티니 박사의 기법이 더 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이씨를 기소했던 데이비드 크리스틴 먼로 카운티 검사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재기소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지만 얼마나 많은 증인이 아직 생존해 있는지,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당시를 기억하는지를 신중히 재검토하고 항소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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