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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언론인 브래들리 WP 전 편집국장 사망

등록 2014-10-22 18:07수정 2014-10-23 15:03

‘워터게이트’ 특종보도 진두지휘
권력에 굴하지 않는 언론인 표상
오바마 “언론의 공공선 제시” 애도
벤 브래들리 ‘워싱턴 포스트’ 전 편집인
벤 브래들리 ‘워싱턴 포스트’ 전 편집인
미국 현대사를 뒤흔든 걸출한 언론인이 타계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1972년)를 진두지휘했던 벤 브래들리 <워싱턴 포스트> 전 편집인이 21일 워싱턴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미국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93.

브래들리 전 편집인은 1950년대부터 기자로 활약하다 1965년부터 1991년까지 26년간이나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과 편집인을 역임했다. 그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진실을 추적하며 용기 있게 보도하는 언론인의 전범을 보여줬다.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1972년)와 미 국방부가 베트남전쟁을 기획한 기밀 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의 폭로(1971년)는 그 정점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미국 대선 당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포함된 비밀공작반이 민주당 후보의 선거 사무실을 불법 도청하려다 들통난 사건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닉슨 정권의 전방위 압박에 맞서 워터 게이트 사건의 내막을 취재해 보도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른 군소 언론들까지도 이 사건을 따라 보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평가했다. 워터게이트 보도는 1974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 냈다. 이를 취재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고, <워싱턴 포스트>는 세계적인 언론으로 도약했다.

1971년 벤 브래들리(사진 오른쪽)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과 이 신문의 캐서린 그레이엄 편집인이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과정에 대한 ‘펜타곤 문건’을 보도하면서, 국방부 기밀문서 공개 소송을 냈다. AP 연합뉴스
1971년 벤 브래들리(사진 오른쪽)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과 이 신문의 캐서린 그레이엄 편집인이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과정에 대한 ‘펜타곤 문건’을 보도하면서, 국방부 기밀문서 공개 소송을 냈다. AP 연합뉴스
브래들리 편집인의 소신과 배포는 ‘워터게이트’ 특종 한 해 전인 1971년 법률 자문 변호사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데서 먼저 빛을 발했다. 펜타곤 문건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68년 5월까지 미국이 베트남에서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쟁 참전의 구실로 삼는 등 정치·군사적으로 깊숙이 개입한 과정을 기록한 최고기밀 보고서다. 미 국방부의 내부 제보자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이 문건을 넘겨줬고, <뉴욕 타임스>가 먼저 1보를 터뜨렸다. 이어 후속보도가 이어지자 미국 정부는 법원으로부터 기밀서류의 보도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브래들리가 편집국장으로 있던 <워싱턴 포스트> 역시 <뉴욕 타임스>의 첫 보도가 나간 닷새 뒤부터 시리즈 보도에 가세하면서 보도금지 취소를 요구하는 공동 법정투쟁을 벌였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 두 신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한 이들 신문의 ‘펜타곤 문건’ 보도는 미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이후 거센 반전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브래들리는 재임 기간 동안 유능한 언론인들을 등용하고 신문 편집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며 탐사 보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에 수여되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부음 소식을 접한 직후인 21일 저녁 공식성명을 내어 “브래들리 전 편집인에게 저널리즘은 단순한 직업 이상이었으며, 우리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공공선이었다”고 애도했다.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 포스트> 회장은 “브래들리 전 편집인은 재임 26년 동안 (신문 편집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넘치는 활력과 두둑한 배포와 뜨거운 열정으로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이 신문의 발행인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퓰리처상을 받은 회고록 <개인의 역사>(1997년)에서 “브래들리는 (취재·보도의) 기본원칙을 만들었다. 취재 대상이 한발짝 여유를 가지도록 모호한 질문을 하지 않고 끈기 있게 추궁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이는 것이었다”고 돌이켰다. “브래들리에게선 아이디어가 넘쳤고, 항상 ‘왜?’라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고도 했다. 캐서린은 1968년 브래들리를 편집국장으로 전격 발탁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기자들의 신분은 물론 신문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닉슨 정권의 갖은 외압에 굴하지 않고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며 든든한 방패막이가 됐다. 

브래들리 전 편집인의 26년 재임 기간에 <워싱턴 포스트>는 워터게이트 특종 등 모두 18개의 퓰리처상을 휩쓸며 권위지의 지위를 탄탄히 굳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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