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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6 20:12 수정 : 2005.01.26 20:12

보수로 가는 미국 사회

1. 보수의 새 거점- 기독교복음주의
2. 3개 축-헤리티지재단, 러시 림보, 폭스뉴스
3. 보수주의 운동 발전사
4. 네오콘- 눈 뜨고 꿈꾸는 자들
5. 진보의 부활은 가능한가

“왼쪽으로-중도로” 놓고 민주당 논란
당밖선 이미 ‘반부시’ 전열 정비 시작

“솔직히 당황스럽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우리는 존 케리의 패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나. 앞으로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어디로 가야 하나.”

지난 12월 말 진보 주간지 <네이션>은 이런 화두를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이론가 20여명에게 던졌다. 그만큼 대선 패배의 충격은 컸다.

백가쟁명식의 대답이 쏟아졌다. “앞으로 2년 동안은 ‘방어의 정치’를 해야 한다. 민주당은 낙태 등을 둘러싼 논란에서 벗어나, 사회보장제도 등 실질적 문제에서 공세적인 방어를 해야 한다.”(시더 스코크폴 하버드대 교수)


“민주당은 선거에서 아이큐(지능지수)를 심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권자는 이큐(정서지수)를 심판했다. 아이큐가 높은 정치인은 데이터를 이해하지만, 이큐가 높은 정치인은 사람을 이해한다.”(반 존스 캘리포니아 인권센터 소장)

“보수진영이 1960년대부터 했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정치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고통스런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핵심적인 도덕적 가치를 담은 진보적인 철학이 필요하다.”(대니 골드버그, <가치전쟁의 파견대> 저자)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보다 많은 돈을 썼다.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외곽단체까지 포함해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진영은 최소한 9억2500만달러, 조지 부시 대통령 진영은 이보다 적은 8억2200만달러를 썼다. 그런데도 졌다.

대선 패배 이후 최대 논쟁은 민주당의 진로다. 전통적 지지층을 격동시키기 위해 좀더 왼쪽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색깔을 희석하며 중도로 방향을 틀 것인가. 이걸 놓고 민주당 안팎에선 계속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전통적 지지층’이 이미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민주당 조직력의 한 축이 ‘강력한 노동조합’이었지만, 그런 노조는 더는 없다. 반대로 보수주의 진영은 복음주의라는 새로운 동원조직을 갖추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에게 다가서지 않는 이상 집권은 불가능하다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달 초 민주당의 상·하원 수십명은 복음주의 운동가 중 진보성향인 짐 월리스를 초청해 모임을 열었다. 의원들은 민주당이 더는 전국정당이 아닌, 동북부(뉴욕, 매사추세츠 등)와 태평양 연안(캘리포니아)만을 가진 ‘지역정당’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냈다. 월리스는 이 자리에서 “사회적 이슈에서 좀더 중도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좌표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건 대안이 아니라는 반론도 거세다. 1972년 조지 맥거번 민주당 후보의 대선 참패 이후, 민주당은 이미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왔다는 시각이 그 밑에 깔려 있다. 1992년 빌 클린턴의 집권과 재선 성공은 ‘작은 정부’라는 보수 진영의 핵심 어젠더를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인 리처드 비거리는 “클린턴은 민주당을 중도로 움직여 집권했을 뿐 미국 보수화라는 큰 틀에서 보면 (그의 집권은) 큰 의미가 없다”고 평했다.

<20세기 미국의 좌파사상> 저자인 리처드 로티는 “민주당이 좌표를 중도로 옮겨봐야 소용없다. 공화당은 그만큼 더 오른쪽으로 가면서 민주당을 ‘좌파’라고 계속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대안으로 “민주당은 서민층을 대변하는 색깔을 더욱 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경제침체기엔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집권처럼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노선에 관계없이 ‘반 부시’를 핵심구호로 삼는 민주당 바깥의 진보 진영은 이미 전열 정비를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온라인 부시반대 운동을 선도했던 ‘무브온’은 지난해 11월30일 전국적으로 1600여개의 오프라인 회원 모임을 열었다. 진로를 논의하는 장이었다. 여기선 ‘풀뿌리 조직’으로 계속 활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나왔다.

또다른 주목할 만한 흐름은 보수 진영을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헤지펀드의 큰손 조지 소로스와 금융재벌 허브 앤드 메리언 샌들러 부부, 보험재벌 피터 루이스 등 진보 성향의 거부들은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비밀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거액을 출자해 진보적 이념을 전파하는 싱크탱크를 워싱턴에 세우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들이 최소한 5년간 2500만달러 이상을 출자할 것”이라며 “보수 진영의 헤리티지재단에 맞서는 싱크탱크를 세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라디오 토크쇼를 보수의 손에서 빼앗아오려는 시도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 전역에 1200여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갖고 있는 ‘클리어채널’은 지난 19일, 3개의 방송국을 진보적 토크쇼만 방송하도록 바꿨다고 발표했다. 클리어채널의 게이브 홉스 부회장은 “1988년 이전만 해도 라디오 토크쇼는 매우 진보적이었다. 러시 림보가 나오면서부터 보수화했는데, 앞으로 진보적 토크쇼는 전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진보의 부활은 가능할까. 쉽지 않다는 데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의 내용을 새롭게 채운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희망을 또한 갖고 있다. E.J.디온 2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좌표를 우나 좌로 옮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 출구조사를 보면, 유권자의 34%가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보수적’이라고 답한 반면에, ‘진보적’이라고 답한 유권자는 21%에 불과했다. 나머지 45%는 ‘중도’라고 답했다. 다수의 유권자가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재집권은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진보주의’의 내용을 새로 채움으로써 유권자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론은 지난 12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로 가시화했다. 민주당 내 진보파 원로인 케네디 의원은 이 연설에서 “사회보장과 의료보험 등 민주당의 진보적 가치에서 후퇴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낙태 등 ‘도덕적 가치’ 문제에서 당의 입장을 바꾸자는 보수파들의 주장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진보주의란 낙태를 권장하는 게 아니다”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낙태를 줄이려면 여성과 부모에게 교육과 경제적 (재활의)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의 기본 이념과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케네디가 제시한 건 민주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길로 보인다. 성공을 보장하진 않지만,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다양한 의견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다. 진보의 부활을 엿볼 수 있는 첫 시험대는 2006년의 중간선거가 될 것이다. <끝>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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