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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테러와의 전쟁’, CIA 농간으로 ‘고문 전쟁’이 됐다

등록 2014-12-14 20:11수정 2014-12-15 08:58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해 살해하는 과정을 그린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2012년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고문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해 살해하는 과정을 그린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2012년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고문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CIA의 CIA에 의한 CIA를 위한 ‘고문 전쟁’
“그들의 눈알에 파리가 기어다니게 될 겁니다.”

2001년 9·11테러 이틀 뒤인 9월13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코퍼 블랙 중앙정보국(CIA) 대테러센터장은 중앙정보국 주도의 아프간 침공 작전안을 제시했다. 그는 탈레반 정권을 타도하는 데 단지 몇주만 걸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틀 뒤인 15일 조지 부시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모인 캠프데이비드 회의. 부시 대통령은 공습 위주의 국방부 작전안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총체적인 새로운 메시지가 필요하단 말이야.” 회의는 얼어붙었다.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댄 채 시가를 씹던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장이 나섰다. 그는 중앙정보국 특수행동국 소속 군사요원이 아프간에 잠입해 북부동맹 등 반탈레반 세력과 연계해, 탈레반 정권을 타도하는 작전안을 다시 설명했다.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미군 특수부대 병력과 결합해 미군의 공습을 인도하며 반탈레반 병력과 공조하자는 작전안이었다. 부시는 표정이 밝아졌다.

2001년 9·11테러 나흘 뒤
부시 행정부 ‘캠프데이비드 회의’
CIA가 전쟁 수행 기구로 나섰다
‘테러 도모자 체포·구금’ 전권 부여

관타나모엔 최대 800명 수감
“고문 없다” 국정 최고책임자들 거짓말
미, 동맹국에 용의자 고문 하청도

‘테러와의 전쟁’ 명분 시작했으나
‘고문 전쟁’으로 변질 실패의 길로…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이 거대한 전쟁 수행 기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중앙정보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고문에 기댄 더러운 전쟁으로 치닫는 전주이기도 했다. 부시는 그해 9월17일 각료 회의에서 “중앙정보국이 먼저 아프간에 가기를 원한다”며 중앙정보국 주도 아프간 침공안을 공식화하면서, 비밀작전 통보각서(MON)에 서명했다. 중앙정보국장에게 “미국 시민과 이익에 지속적인 중대한 폭력과 인명 위협을 조성하거나, 테러 행위를 도모하는 자들을 체포해 구금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전권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중앙정보국 군사요원 110명과 미군 특수병력 300명의 지상군 병력만을 아프간에 파견해 한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국가간 재래식 전쟁이 아닌 비대칭 전쟁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앙정보국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이 중앙정보국에 의해 주도되자,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인 비합법적 공작에 기초한 정보 획득은 이 전쟁의 주된 양상이 됐다. 고문은 그 필연적 부산물이었다. 부시 행정부 안에서도 강경 우파 및 일방주의 성향을 대표하는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면서 이런 양상은 더욱 심해졌다.

체니 부통령은 “국제 테러리즘 행위에 관여, 조력, 사주, 공모한 자를 구금하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한편 이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 적용이나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명시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특정 비국민의 구금, 처우, 재판’이라는 제목의 군사 명령을 작성해 2001년 11월10일 부시 대통령에게 제시했다. 이틀 뒤 부시 대통령은 이를 승인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이를 <시엔엔>(CNN) 보도를 통해서 처음 접하고 “도대체 저런 빌어먹을 일이 있냐!”고 분노했다.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테러 공격이 본격화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은 해외 미군기지의 안가나 동맹국 당국에 테러 용의자를 보내 심문하곤 했다. 부시 행정부와 중앙정보국은 이런 편법을 테러와의 전쟁의 ‘합법적 관행’으로 승격시켰다. 2001년 12월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면서 테러와의 전쟁 포로들이 넘쳐나자, 미국은 특단의 조처를 강구했다.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에 미국 국내법과 전쟁포로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치외법권적 수용소를 설치했다. 럼스펠드는 “관타나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소악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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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에 첫 수감자들이 도착하기 이틀 전인 2002년 1월9일 백악관 법무관 존 유는 관타나모에 수용될 알카에다와 탈레반 분자들은 전쟁포로 대우나 제네바협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회람을 돌렸다. 한국계 변호사인 유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제네바협정이 적용되는 ‘국가’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부시는 그해 2월7일 탈레반 등은 ‘비합법적 전투원’이라며 이들에게 제네바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 뒤 관타나모에는 최대 800명이 수감됐다. 이들 중 미군이 직접 체포한 포로는 5%에 불과했다. 대부분 아프간이나 파키스탄 등 동맹국 정부가 인도한 용의자들이었다. 미국이 제공한 용의자 한명당 5000달러가 넘는 포상금이 그 동력이었다.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를 처음으로 파헤친 연방수사국(FBI) 특별수사관 대니얼 콜먼은 관타나모에서 나온 정보 중에서 “유용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800여명의 수용자 중 기소된 이는 3명에 불과하다. 이 중 한명인 빈라덴의 운전사 살림 함단은 2006년 대법원에서 관타나모 수용자들도 제네바협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관타나모 수용소 실태를 조사한 수전 크로퍼드 전 연방판사도 2009년 이 수용소의 대표적 고문 피해자이자 9·11 테러에 가담하려던 20번째 대원인 무함마드 까흐타니가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으므로 기소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더 극악한 사례는 미국이 이집트 등 동맹국에 테러 용의자 심문을 하청하는 ‘용의자 인도’ 프로그램이다. 고문이 노골적으로 자행되는 국가에 고문을 하청한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14건의 용의자 인도 기록이 남아 있는데, 부시 행정부 시절에는 53건의 기록이 남았다. 기록에 없는 사례도 수백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문으로 악명 높은 국가들에 인도된 53명 중 19명의 용의자는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2003년 2월 중앙정보국 요원들에 체포된 아부 오마르 사건은 용의자 인도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남용 사례다. 오마르는 이집트 비밀경찰에 넘겨져 7개월 동안 성폭행 등 고문을 당한 뒤 석방됐다. 석방된 그는 이 사실을 이탈리아에 있는 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밝혔다가, 다시 체포되어 3년이나 더 수감됐다. 그의 실종을 추적하던 이탈리아 검찰이 이 사실을 밝혀내 중앙정보국 요원을 비롯해 관련 미국인 26명을 기소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기자회견에서 용의자 인도 프로그램과 관련해 “용의자들은 고문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나라들은 고문을 믿지 않는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몇달 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미국은 용의자가 고문당할 것이라고 믿는 나라에는 어떤 용의자도 인도하지 않았고, 인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말했다. 대통령과 국무장관 등 미국의 국정 최고책임자들이 공개 석상에서 해대는 공공연한 거짓말 속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더러운 고문 전쟁으로 변질되며 실패의 길로 치달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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